| [홍인화의 '5월이야기']류동운열사와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장 |
| 2023년 02월 16일(목) 1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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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는 덧붙였다. 한신대생은 입학하면 필독서인 ‘역사란 무엇인가?’의 원서를 읽는다. 원서가 필독서여서 본인들이 소장하기도 하지만 많이 선배들에게 물려받았다고 했다. 그 순간 ‘기록관에 기증된 책이 류동운 열사의 것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 5월27일 새벽에 도청이 함락되면서 주검들과 함께 피 묻은 책 한권이 발견됐다. 주검 품안에서 있는 책을 집었다. 빨간 피가 묻어있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원서였다. 그 이후 그 책자를 36여년 간직하고 있다가 기록관이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증받은 책이다. 그 책을 마주할 때마다 누구의 책일까 궁금했었던 터에 한신대 방문에서 류동운 열사가 본 책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는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 대한 정의다. 한신대 신학과 79학번 2학년 류동운은 1980년 5월27일 광주의 정신이 됐고 현재 망월동에 묻혀있다. 류동운은 80년 5월18일 전남대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다가 계엄군에 의해 상무대로 연행됐다. 아버지가 시무했던 충북 증평교회의 교인 정웅(당시 31사단장) 장군의 도움으로 사흘 만인 5월21일 가까스로 풀려났다. 부친 류연창 목사가 시무했던 광주신광교회는 광주공원에 있었다.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기숙사 마저 폐쇄되면서 운동권 신학생이던 류동운은 부친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역사의식을 갖게 된다. 류동운은 고교 시절부터 운동권 학생이었다. 광주 진흥고 1학년 때 가택 수색 과정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글이 담긴 노트가 발견되면서 경찰에 연행된 전력이 있다.
상무대에서 풀려나자마자, 남동생(동인)과 함께 전남도청 등의 투쟁 현장에 들렀다가 귀가했다. 군인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몸이 크게 상한 그는 닷새 동안 겨우 몸을 추스르고 5월25일 다시 거리에 나섰다가 친구 형의 죽음을 목격하고 시민군에 참여했다. 아들이 시민군이 돼 전남도청에 있다는 소식을 접한 아버지 류 목사는 5월26일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어머니와 형제를 만났고, 몸을 씻은 후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라는 글을 일기에 남겼다. 동생(동인)에게 “한 줌의 재가 된다면 어느 이름 모를 강가에 조용히 뿌려다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는 마지막을 예감하고 아들을 붙잡았다.
“아버지, 저를 붙잡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무자비한 계엄군에게 희생당하고 있는데 왜 자기 아들만 보호하려고 하십니까. 아버지는 왜, 평소 소신을 버리십니까. 아버지는 설교하시면서 ‘역사가 병들었을 때, 누군가 역사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만 이 역사가 큰 생명으로 부활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아버지, 저를 붙잡지 말아주세요!”
류동운 열사와 E.H 카의 ‘역사는 무엇인가?’. 카가 그토록 강조했던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는 류동운 열사의 흔적을 통해 남겨지고 구현되고 있다. 치열했던 류동운 열사의 광주정신이 사그라들지 않고 그 책의 보존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기록물로 더욱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에 묻히지 않고 성큼 성큼 걸어 나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각성시키는 힘이 되고 있다. 나의갑 관장(전)은 “5·18을 오래된 현재”라고 했다. 여전히 5·18민주화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5·18기록관이 해야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