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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불행할 때 정치가 해야할 일

본사 부회장

2023년 02월 22일(수) 19:37

평소 한국인은 참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들 산다. 외형적으로 부자 나라가 됐지만 빈곤을 탈출해 먹고살만해진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국민은 참 힘들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2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지난 2019∼2021년 기준으로 집계한 주관적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9점으로 집계됐다. OECD 38개국 가운데 36위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으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 보다 삶의 만족도 점수가 낮은 나라는 튀르키예(4.7점)와 콜롬비아(5.8점) 2곳뿐이었다. 이 기간 한국인이 느낀 삶의 만족도는 OECD 평균치(6.7점)는 물론, 인접한 일본(6.0점)보다 낮았다.

삶의 질이 낮으니 자살률이 늘어났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를 뜻하는 자살률은 2021년 기준 26.0명으로 전년보다 0.3명 늘었다. 특히 70대(41.8명)부터는 인구 10만명당 자살자가 40명을 넘었고, 80세 이상에서는 61.3명으로 급격히 치솟았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자살률은 월등히 높다. 2019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 우리가 10만 명당 25.4명인데, 2위인 리투아니아가 22.2명으로 2위와도 차이가 큰 편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낮은 국가는 그리스, 이스라엘, 멕시코 순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이가 학대받는 나라라는 오명도 뒤집어쓰고 있다. 아이 삶의 질과 관련 있는 아동학대피해 경험률이 급증세다. 2001년 아동인구 10만 명당 17.7건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더니 2019년 380.3명, 2020년 401.6명, 2021년 502.2명까지 치솟았다. 20년 동안 3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아동학대 사례 건수는 전국 아동 보호 전문기관에 신고된 사례만을 집계한 것인데, 실제 발생 건수는 훨씬 많다고 봐야 한다. 아동의 생존권과 삶의 질, 미래의 사회안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미래의 국민도 불행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국민은 왜 이렇게 삶에 불만족일까.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 사람들보다 왜 더 불행할까. 경제 사정은 많이 좋아졌는데, 삶의 만족도는 왜 낮을까.

우선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 부채 비율이 삶을 팍팍하게 했다. 가구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2021년 기준 206.5%를 기록했다. 가계 부채 비율은 2008년 138.5%에서 꾸준히 늘었다. 특히 2016년(12.2%포인트), 2020년(9.6%포인트), 2021년(8.7%포인트) 등 최근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가구가 쓸 수 있는 소득에서 부채 상환에 필요한 지출이 크게 늘었다는 얘기다. 일본(115.4%), 프랑스(124.3%), 영국(148.5%)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폭등한 부동산이 삶의 질 하락에 미친 영향도 컸다. 자가 점유 가구 비율이 2021년 57.3%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0.6%포인트 줄었다. 주택 공급이 늘었지만, 막상 자기 소유 집에 사는 경우는 줄었다는 뜻이다.

걱정스런 부분은 청년층 위기다. 2021년 20대(56.8%)와 30대(40.6%)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다. 특히 20대 자살자는 2017년(16.5명)까지는 감소하다가 급격히 늘기 시작해 2021년 23.5명이 됐다. 4년 새 42.4%나 급증한 것은 청년들의 삶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걸 뜻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7~2021년 7만8016명에서 17만7166명으로 127.1% 급증했다. 불안장애 환자도 5만9080명에서 11만351명으로 늘었다. 미래세대가 점점 불행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나라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953년 67달러에서 2021년 3만4870달러로 520배 증가했지만 유엔 세계행복지수는 2012년 56위에서 2022년 59위로 되레 떨어졌다. 5년째 1위인 핀란드는 소득도 많지만 삶의 행복도 역시 높다.

정부가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외형적 성장에만 치우쳐 있던 국가 목표의 수정을 검토하고 성찰해 봐야 한다. 경제대국이라는 위상에 맞게 사회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병든 부분을 빨리 수술해야 한다. 놓쳤던 공동체의 복원, 여가의 확대, 일과 생활의 밸런스, 정신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최근 미국 순위조사 전문매체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USNWR)가 최근 발표한 ‘가장 강력한(Most Powerful) 국가’ 순위에 따르면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에 이어 한국이 6위에 올랐다. 외형적으로는 부강한 나라인데 국민의 삶의 질이 중위권 국가의 국민보다도 약하고 불행하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부분에 정치력, 정치가 필요하다. 삶의 체질, 공동체의 근간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인은 계속 불행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약해지고, 가난해지고, 불행해지는 현상을 주목하고 국민 삶의질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불평등이 덜하고 약자들을 위한 안전망이 잘돼 있는 나라 국민이 행복하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높고 개인의 자율성이 존중된 나라가 행복하다. 극심한 경쟁과 비교 문화 보다는 상생하고 북돋는 문화가 있는 나라 국민이 행복하다.

우리나라 국민이 불행하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정말 정치를 못하고 있다는 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