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 이계양
2023년 02월 27일(월) 19:39
이계양 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 품자주자시민들 공동대표
안데르센(덴마크)의 동화 가운데 ‘벌거숭이 임금님’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나랏일 돌보기보다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을 떠날 줄 모르고 “내 모습 어때?” 하며 뽐내기 좋아하는 임금님이 있었다. 신하들은 “정말 멋있습니다”며 칭찬하지만 돌아서서 흉을 보았다. 백성들까지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사기꾼 두 명이 와서 “좋은 생각이 있다”며 임금에게 말한다. “저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감을 짤 수 있습니다.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이지요” 임금님은 귀가 솔깃하여 신기한 옷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고 싶어 “당장 옷을 만들라”하고 돈도 많이 주었다. 사기꾼들은 베틀에서 옷감을 짜는 시늉만 했다. 며칠 후 임금님은 믿을 만한 신하를 보내어 “알아보라”고 지시했지만 신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 난감했다.

“드디어 옷이 완성되었다”며 두 사기꾼은 옷을 가져왔다. 임금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임금님은 “오, 이 세상 최고로 멋진 옷이야”라고 화답했다.

두 사기꾼은 옷을 입혀주는 척, 임금님도 몸을 돌려 거울을 보는 척했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본 신하들은 깜짝 놀랐지만 바보라는 말을 들을까 봐 “이런 색과 무늬는 처음 봅니다. 최곱니다”며 맞장구쳤다. 드디어 임금님의 행진이 시작됐다. 길가에 나온 백성들은 모두 임금님의 옷을 칭찬했다. 그때 한 어린이가 외쳤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는 어린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임금님은 창피했으나 행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 중 누가 바보인가? 임금님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이 바보인가 아니면 어린이가 바보인가. 한 어린이를 제외한 나머지 등장인물은 “눈에 안 보이는 옷감을 보인다”고 말하며 임금님을 찬양하고 있다. 사기꾼들의 농간대로 ‘바보’가 아니기 위해서 ‘바보’가 되어버린 공동체이다. 한 어린이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며 외치고 있다. 그냥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외치고 있음에 주목한다. 누가 바보인가.

사전에서 ‘바보’는 “어리석고 멍청하며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요즘엔 ‘착하다’ ‘너무 순진하다’는 의미로 더 널리 통용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보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이야기속의 임금님과 신하와 백성(어른)들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래서 벌거벗은 임금을 보고도 최고로 멋진 옷이라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있다, 요즘 논리대로라면 어린이는 천하의 바보요. 어른들은 바보가 아니라 ‘바라보이는 사람(?)’, ‘바람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현명한 독자들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리는’ 이야기 속의 사람들보다 더 빨리 알아차린다. 누가 진정한 바보인가를.

바보라는 소리를 안 듣기 위해 자신을 속이는 임금님은 자랑하고 뽐내는 사람, 자신을 속이고 안 보이는 옷을 ‘최고’라며 추켜세우는 신하들은 비겁하고 약삭빠른 사람, 길가에 나와 박수치는 백성들은 부화뇌동하는 사람들로 한 몸뚱아리(공동체)다. 누가 봐도 자명한 바보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역사와 문화의 주류를 이루어갈 수 있음은 정의(正義)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끊임없이 유혹하는 사기꾼들과 이들의 술수 앞에서 놀아나는 허영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소위 어른 군상들 때문이다. 눈에 안 보이는 신비한 옷을 만들어내는 사기꾼들이 횡행하는 현대산업자본주의 시대인 지금의 모습과 판박이이다.

현재 우리는 허위와 위선과 가식, 허장성세의 이전투구로 똘똘 뭉치고 결합한 바보공동체의 행진을 멈추게 할 엄두를 낼 수가 없다. 그러기에 어린이의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는 외침이 있어야만 한다. 그냥 ‘말하기’로는 누구 귀에 들리겠는가. 악을 써서 큰소리로 외쳐야만 한다.

그리하여 바보 같은 어린이의 외침에 웃음으로 공감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침묵을 깨야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진실하게 외치지 못할지언정 말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착하고 순진한 새로운 바보들이 똘똘 뭉쳐서 진정한 바보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창피를 무릅쓴 채, 아니 창피한 줄도 모르는 체 오늘 이 시간 여기까지 행진을 멈추지 않는 임금님과 신하들의 행렬 앞에 모든 시민들이 한 어린이가 되어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며 외쳐대야 한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바보들의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착하고 순진한 어린이들, 웃음을 터뜨리며 공감했던 다수의 시민들이 발 벗고 목청을 높여야 하리라.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오늘도 다시 묻는다. 누가 바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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