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자치회 표준 조례 강행 말아야 / 이용연 |
| 2023년 03월 05일(일) 19:24 |
|
행안부의 계획은 풀뿌리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해 주민자치회에 대한 다양한 참여를 보장하고, 지역별 여건에 맞게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실망스럽다. 그 개정 사항은 자치위원 선출을 현재의 일반 주민 무작위 추첨에서 위원선정위원회에서 추첨 또는 선출하도록 하고, 이·통장 등을 당연직 위원으로 위촉 가능하게 하여 주민 참여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 참여시 사전 6시간 교육 이수 의무를 삭제해 주민자치에 대한 기초이해와 공동학습의 기회도 없앴다. 또한 법인 또는 단체 등이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삭제하고, 주민자치회 위원 정수를 현재의 30인 이상에서 10인, 20인 이내 등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하여 몇몇 마을유지들이 끼리끼리 주민자치회를 구성할 여지도 열어놓아 주민자치회를 무력화하고 있다.
이러한 행안부 개정 계획은 2013년 주민자치회 시범 실시 이후 착실히 성장해온 주민자치회의 뿌리를 흔드는 역주행으로, 관치자치와 소수의 유지중심 자치를 강행하겠다는 의도로 보여, 마을자치 현장의 주민자치위원과 전문가, 지자체 관계자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2월 23일 광주의 98개동 주민자치회의 연대 조직인 광주시 주민자치회연합회는 긴급 모임을 갖고 이 계획에 대한 반대와 강행 저지에 의견을 모으고, 광주시와 5개 자치단체와 함께 ‘광주다운 주민자치회의 정상화와 고도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윤석열정부 들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 현상은 자치분권의 영역에서도 자치와 참여, 협치와 통합의 가치를 송두리째 뒤엎고 있다. 대표적으로 작년 12월 서울시가 마을만들기 조례를 폐지하고, 마을만들기지원센터를 해산한 것은, 2002년 광주시 북구에서 전국 최초로 마을만들기 조례를 제정해 마을공동체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한 20년 성과와 소중한 가치를 부정하고 갈아엎는 지방자치의 퇴행으로 기록될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마을 현장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와 자치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마을자치의 핵심 주민조직이다. 1999년 주민자치위원회가 설립돼 주민자치와 마을공동체의 오랜 전통을 되살리기 시작해 2022년까지 전국 3천500개 읍·면·동 중 1천200여개가 주민자치회로 전환해 성숙한 마을자치로 주민만족과 마을공동체의 든든한 토대를 만들어 왔다.
주민자치의 이러한 소중한 경험과 성취를 이념적 편향과 정파적 이해로 뒷걸음치게 해서는 안된다. ‘표준’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정도의 근거나 기준을 뜻한다. 정부의 표준조례도 평균적 근거로 제안할 뿐, 전국 243개 자치단체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통일시키려 강요하지도 강행하지도 말아야 한다. 여기에 자치분권과 마을자치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는 소중한 5·18 공동체 정신을 마을과 골목에서부터 실천하고자 하는 소명의식으로 마을공동체운동, 주민참여예산제, 광주형 주민자치모형의 혁신적 제도를 선도하고 확산해 왔으며, 그 바탕에는 광주시민의 높은 시민정신과 단합된 공동체 의식이 있다. 이제 위기에 처한 한국 주민자치와 자치분권 2.0을 광주 자치분권 2.0으로 실천하길 광주시와 5개 자치구에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