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낙비 / 이우걸 |
| 2023년 03월 19일(일) 1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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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도 호령도 소용이 없다
한줄기 쏟아 낸 뒤엔 또 홀연히 사라진다
가뭄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초록이 정의라고 외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목마른 숲이 늘 그의 배경이다
(시집 ‘이명’, 천년의시작, 2023)
[시의 눈]
운암산을 오릅니다. 이어폰으로 Le June의 ‘Hold you one last time’을 까딱까딱 짚으며 분위기깨나 잡지요. 오르막길, 숨이 차오르지만 천천 음악에 젖어들려 합니다. 보니, 봉우리엔 장엄해 보이는 검은 구름이 앉았네요. 에이, 무슨 장엄이예요. 개키지 않은 홀아비집의 그 검정 솜이불과도 같구만요. 엄폐된 나팔에선 휘잉 바람소리가 납니다. 선전포고군요. 아니, 예고고 뭐고 절차 생략이지요. 공격개시! 순간, 야 다 차 삐러라 썅, 우르릉 쾅! 이 작자야, 아나 도망, 멈춰! 나 꼼짝없이 탱크부대 앞에 깔릴 뻔합니다. 야, 꼴좋다. 하지만 맞서겠다 작정합니다. 어쩌겠어요. 나 이미 들어섰는데요. 이 비 맞은 장닭꼴로 집에 가면 안식구는 또 한소리 하겠지요. 마루에 물 떨어져요! 허허 참, 현관에서 벌 좀 서야겠습니다. ‘귀관들을 환영한다!’ 가뭄에 깔딱거리던 숲이 척척 거수경례를 붙입니다. 얼떨결에 나도 손을 척 올립니다. 저거 봐요! 수원지 취수탑의 거수경례가 가장 먼저 올라가네요. 이우걸 시인은 경남 창녕에서 나,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저녁 이미지’(1988), ‘우수의 지평’(1989), ‘모자’(2018) 등 많습니다. 그는 자연에서 현실을 읽고 현실에서 고통을 읽지만, 마침내 고통에서 자연을 읽어내는 그 순환의 시학을 전개하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