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방일을 보는 상반된 시각 / 오수열 |
| 2023년 03월 22일(수) 1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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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단톡방에 일본의 한 중견 판사가 사직서를 내고 변호사 개업 대신 농부로 귀촌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지금까지 남의 죄를 심판했던 일에서 벗어나 이제는 내가 지은 농산물을 선물하면서 살고자 한다”는 대답을 했다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이에 필자가 오래전 어떤 교수가 가업(家業)을 잇기 위해 동경대 교수직을 떠났던 적이 있었던 사례가 생각나 “일본인들의 직업의식에서 볼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라는 댓글을 올렸는데, 금방 “당신은 왜놈들을 좋아하느냐, 나는 일본 놈들이 싫다”며 필자를 친일분자로 몰아가는 글이 올라왔다. 이만큼 한일관계는 정치적 현안을 떠나서 국민 정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문제이자 영역인 것이 사실이다.
어떻든 윤 대통령의 방일 이후 그의 국정수행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다소 하락했다는 언론보도를 보면 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여 윤대통령의 방일에 대해 “친일을 넘어 숭일(崇日)이다”라거나, “대한민국의 1호 영업사원이 되겠다더니 일본에서 월급 받아라”며 비판하는 야당의 주장에 마냥 박수를 보낼 수도 없는 것이 우리가 처한 국제정치·경제적 현실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력 증강과 대남위협 증대는 그 원인과 대처방안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니, ‘지소미아’를 포함한 안보문제는 둘째로 치자.
그러나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한 통상압력을 높이고 있고 중국이 우리의 수출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희토류에 대한 수출을 제한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어려워져가는 경제 환경을 극복하는데, 한일 간의 관계개선이 필요한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렇다고 목적이 옳다고 해 이것이 모든 과정을 합리화 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이번 방일이 외교안보와 경제문제 등 국익차원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우리 국민들의 정서에서 볼 때, 최대 쟁점은 여전히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그에 합당한 배상’에 모아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지금도 독도를 자기들 영토라고 강변하고 있는 일본의 태도를 볼 때 이에 대한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우리 정부의 방식에 겸손함과 진지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반세기 넘는 세월을 참고 견디어온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일본정부의 반성과 배상이 절실하면서도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진정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역대 정부에서 양국간 교섭에 앞서 정권의 최고 책임자들이 직접 그들을 만나 대화하고, 따뜻하게 위로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에 앞서 몇 명 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관계자들을 대통령실이나 관저로 모셔 식사라도 함께 하면서 양국간 관계개선의 불가피성과 대통령으로서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했다면 어떠했을까. 외치(外治)는 내치(內治)의 연장(延長)이라는데, 이처럼 민감한 문제에서 내부적 동의를 구하는 일이야 말로 외교의 성공을 담보하는 선결과제였을텐데 아쉬운 일이다.
오랫동안 정치학을 가르쳐 온 필자는, 우리 대통령들이 대통령(大統領)의 ‘통’자에서 자꾸 통치(統治)만을 생각하고, 통합(統合)의 의미를 간과하는 것을 보면서 항상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쯤 자기에게 엄격하고 국민에게 겸손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국민통합형 대통령’을 가져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