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17)장성군 장성읍 하오마을 윤경숙 씨 ‘감떡’ 달달한 추억이 새록새록…곶감의 반전 매력! 자연이 품어낸 ‘감’에 기다림의 시간 더해 명품 곶감 완성 전통비법 가미 이웃 精 나누는 ‘떡’으로 쪄내면 감동 두배

2023년 03월 28일(화) 19:34

세월을 담아 이웃간 추억과 정을 나누는 감떡.

“떡 찔 때 뒷간 갔다와라잉”

이 말은 장성 지역의 옛 어른들이 사용하던 표현인데, 오늘날도 여전히 아낙네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다. 이는 뒷간을 갔다 오는 단 몇 분간이라도 자리를 뜨면 떡이 설익기 때문에 그만큼 떡을 찌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추수를 마치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말린 곶감으로 떡을 찔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엄마가 딸에게 이렇게 단단히 일러두곤 한다. 특히 ‘감떡’을 만들 때 말이다.

예부터 장성은 감 고장으로 유명하다. 민가에서는 감을 그냥 먹기도 하지만 옛 사람들의 생활 속 지혜를 배워 감으로 만든 음식을 오늘날까지 잇고 있다.

대표적으로 감장아찌와 감떡이다. 감장아찌는 떫은 감에 노란 기가 드는 추석 무렵에 담그는 것이 좋다고 한다. 떫은 감을 소금물에 담가 댓잎을 올려 한 달 정도 절이면 색깔이 노랗게 변한다. 물에 씻어 짠 기를 뺀 감을 납작하게 썰어 쪽파, 고춧가루,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조물조물한 감장아찌는 밥반찬으로 그만이다. 담는 시기를 놓친 감장아찌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늘의 주제, 감떡을 소개한다.

국어사전(성안당)은 감떡을 ‘찹쌀가루와 곶감 가루를 한데 섞어 찐 다음 잣과 호두를 한데 으깨어 경단처럼 만들어서 꿀을 발라 만든 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장성에서 전해 내려오는 감떡은 이와 사뭇 다르다. 장성의 토산물인 감으로 어떻게 떡을 만드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본다.

지난해 11월, 취재팀은 감단지로 유명한 장성읍에서 감떡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주인공을 찾았다. 장성군 장성읍 상오2구 하오마을에 사는 윤경숙 씨이다. 그는 1977년, 23살 때 고향 해남에서 지금 남편의 고향인 하오마을로 시집왔다. 하오마을은 언뜻 보기에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상오마을이 바짝 붙어있어서 마치 한 마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운데 작은 도로를 기준으로 위에는 상오마을, 아래는 하오마을로 나눈다. 상오에 비해 하오는 농지가 좀 많아서 예부터 부촌이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이라 논밭 농사가 주업이고 감 농사가 부업이었지만, 지금은 감이 특산물로 자리 잡으면서 농가소득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어머니에게 감떡 만드는 비법을 제대로 전수 받은 윤경숙 씨가 감떡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현재 40여 가구가 모여 사는 하오마을의 지명 유래는 장성문화원에서 편찬한 ‘장성군 마을사 장성읍 편’(2011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아래 하(下) 자, 지네 오(蜈) 자를 쓰는 하오는 오두봉이라는 뒷산이 지네 형상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오리는 바깥으로 나온 지네를, 하오리는 먹이를 찾아 땅속으로 들어간 지네를 닮아있다. 하오는 원래 역면(驛面)에 속했으며 1789년 ‘호구총수’에 하오취리와 사천리로,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북삼면조(北三面條)에 하오리와 사천리로 기록돼 있기에, 당시에는 독립된 2개의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사천이 하오마을에 속해 하나의 행정구역이 됐다.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김해김씨(金海金氏)와 연안차씨(延安車氏)이다. 윤경숙 씨의 시어머니가 연안차씨이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감떡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 윤씨가 시집와서 처음 먹어본 감떡 맛은 어떠했을까?

“친정엄마가 해 준 적은 없었고,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해주셨는데 달고 맛있었제.”

당시의 장성 사람들은 ‘똘개’, ‘비단시’, ‘쑤시감’, ‘찰감’ 등 다양한 종류의 재래종 떫은 감으로 감떡을 만들었다. 단감이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떫은 감이 식재료로 쓰였다. 장성군은 못재를 기준으로 아래쪽 남면은 단감 주산지였고 위쪽에 위치한 장성읍, 북일면, 북이면, 북하면은 떫은 감의 주산지였다. 못재 위쪽이 추위에 강한 떫은 감 재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밭두렁이나 비탈진 곳, 개간하기 힘든 땅에서도 농약도 안 하고, 전정을 안 해도 감나무는 잘 자랐다고 그는 말한다.

감 농사에 이어 사과 농사까지 어언 40여 년 농사를 지어온 그의 남편 이씨의 말이다.

“옛날부터 장성은 황토보다 자갈이 많아요. 밭에 돌이 엄청 많은디 할머니들이 안 주워내요. 그래서 물어보면 ‘장성 돌은 오줌 싼께 가뭄도 안 타’ 그랬어. 그 소리가 뭐냐면 마른 땅에 돌이 올려져 있으면 돌에 물방울이 맺혀 있어 땅이 촉촉해져. 땅과 돌이 놓여진 표면은 습도 유지가 되니까 가뭄이 안 든다는 거제. 또 장성은 어디를 봐도 바다와 연결이 안 되어있어. 재 하나 넘으면 전북 고창인데 거기서 부는 간접적인 해풍의 영향으로 기온이 급강하하지 않으니까 겨울에 냉해를 입지 않아요. 옛날에는 감 농사가 젤 쉬웠제.”

이런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장성은 감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췄다. 옛날에는 가을에 풋감을 따면 감물 염색을 많이 하는 제주도에 팔거나 홍시, 곶감을 만들어 완도, 여수 등 남쪽 섬으로 판매하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 재배하는 감의 품종이 달라졌다. 아이 주먹만 한 재래종 감의 작고 쫀득한 식감에 비해, 크기가 크고 달며 과즙이 많은 대봉감이 상품성이 좋은 까닭이었다. 이에 따라 마을 전체는 대봉감으로 바꾼 것이다.

늦가을, 떫은 감이 주홍색으로 물들면 일손들이 바쁘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다.

“감은 한두 번 서리는 맞아도 되내기(된서리)가 오면 얼어버리니까 안 되거든.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감을 따야 해요.”

된서리 내리기 전 따낸 대봉감은 위생적인 신식 곶감걸이에 끼워 처마 밑에서 말린다. 손으로 눌러 말랑말랑해지면 감 속살이 응축된 달달한 곶감이 완성된다.

곶감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따는 시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신식형 곶감걸이가 있어서 감꼭지에 매달아 깨끗이 말리지만 과거에는 감 껍질을 깎아서 싸릿대에 꿰어 말렸기 때문에 곰팡이가 피었다고 한다.

비를 맞으면 안 되기에 집집마다 처마 밑에 걸어서 곶감을 말리는 모습은 이때만 볼 수 있는 하오마을의 진풍경이다. 두 달 정도 후 손으로 눌러 말랑말랑해지면 감 속살이 응축된 달달한 곶감이 완성된다. 꾸덕꾸덕하게 말려 겉은 쫀득하고 속은 촉촉한 상태의 곶감을 최상으로 친다. 장성의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내는 것은 좋은 곶감이 완성되는 비결이다.

해마다 그랬듯이, 윤경숙 씨는 어김없이 처마 아래에 곶감을 주렁주렁 말린다. 40년간 며느리로서 시하의 삶이 녹록지 않았겠지만, 곶감 철이 되면 시어머니가 손수 만든 감떡 맛에 그는 늘 반했었다고 한다. 솜씨 좋은 시어머니의 손맛을 배워 자식들을 섬기던 그의 손끝이 야무지다.

자, 그럼 감떡을 만들어보자.

먼저 찹쌀을 깨끗이 씻어 물에 담가 하룻밤을 재운 후, 가루로 빻는다. 이 찹쌀가루를 체에 거르지 않도록 한다. 거르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야 떡을 빨리 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어머니들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이다. 팥을 삶는 것도 그만의 노하우가 있다. 설탕 대신 당원을 물에 타서 붓고, 소금을 조금 넣어 삶는 것이 팥 모양을 그대로 살리고 포근한 식감을 살리는 비결이다. 큰 용기에 곶감을 먹기 좋게 썰어 넣고 설탕을 뿌려 버무리고 찹쌀가루를 섞는데 으깨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들어 올려 살살 털듯이 섞어줘야 한다.

큰 용기에 곶감을 먹기 좋게 썰어 넣고 설탕을 뿌려 버무리고 찹쌀가루를 섞어주는데 으깨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살살 털듯이 섞어줘야 한다.

이번에는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인 후, 시루를 올리는데, 이때 훈김이 빠지지 않도록 시룻번을 붙인다. 이는 찰떡을 빨리 익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시루가 달궈지면 맨 밑에 팥을 깔고 그 위에 한데 섞은 곶감, 설탕, 찹쌀가루를 올린 후 팥을 또다시 올린다. 여기서 동작 그만. 이 상태에서 2-3분간 뜨거운 열을 가해야 찰떡이 잘 익는다고 한다. 또한, 약 2㎝ 두께로 켜켜이 올릴 때, 시루 가쪽은 김이 빨리 올라오기 때문에 약간 높게, 가운데는 움푹 파인 듯이 라운드식으로 놓는다. 이렇게 하면 마지막에 떡이 봉긋 올라오지 않고 평평하게 잘 쪄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떡을 찔 때, 섬세한 손놀림과 예리한 눈썰미가 필요하다. 시루에 면보를 덮은 후, 삼사십 분이 지났을까. 그가 젓가락 하나를 물에 묻혀 떡을 푹 찔러본다. 덜 익었으면 젓가락에 쌀가루가 묻어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잘 익었다는 신호. 그렇게 떡이 완성될 때까지 그는 잠시도 시루 곁을 떠나지 않는다.

체에 거르지 않은 찹쌀가루와 모양을 그대로 살려내 삶아낸 팥, 먹기 좋게 잘라낸 곶감이 준비되면 살살 털듯이 섞어준다. 시루가 달궈지면 맨 밑에 팥을 깔고 그 위에 한데 섞은 곶감, 설탕, 찹쌀가루를 올린 후 팥을 또다시 올린다. 이 상태에서 2-3분간 뜨거운 열을 가해야 찰떡이 잘 익는다고 한다.

떡시루를 거꾸로 탁 엎어놓자, 김이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푸짐한 감떡을 칼로 자르면 붉은 팥과 팥 사이사이 하얀 찰떡에 스며든 주황색 곶감이 조화로워 그 단면은 마치 장성 감나무밭에 물든 석양 노을 같다. 떡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감 향기가 코끝을 타고 들어와 입맛을 한껏 고양시킨다. 팥은 고소함의 망울을 터트리고 곶감은 본연의 달달함과 함께 찰기로 쫀득쫀득해 감동의 맛을 선물한다. 곶감의 반전 매력에 깜짝 놀라고 그 맛에 푹 빠져 자꾸자꾸 입이 떡 벌어진다.

농한기에 한 해 농사의 수고를 덜고 이웃들과 둘러앉은 오붓한 감떡 잔치. 창밖에 앙상한 감나무가 내어준 맛과 영양이 윤경숙 씨의 정성과 만나 이웃들과 나누는 정으로 따스하게 흘러간다. 장성 하오마을에는 그냥 말려먹는 곶감이 아니라 떡과 어울려 추억이야기가 서린 색다른 곶감의 맛으로 더욱 풍성해져 간다.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