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96) 자리 함께한 부로(父老)의 모습 완연히 평상시다웠어라

2023년 03월 29일(수) 19:15

夢中(몽중)-동계 정온
夢入高堂獻壽(몽입고당헌수굉) 筵中父老宛平生(연중부로완평생)
曉鷄催喚殘魂返(효계최환잔혼반) 寒月 籠滿一庭(한월몽롱만일정)
고당에 헌수하는 잔 올리던 꿈에
자리에 함께하신 부로의 모습에서
새벽에 꿈이 깨이고 달빛만 가득하네.

몽류록계 작품을 많이 보게 된다. 생시에 이루려고 했던 일들을 다 이루지 못하다가 꿈을 통해 성사시키거나 소망을 이루는 경우를 본다. 김시습의 한문소설이나 김만중의 소설에서 이를 발견한다. ‘원생 몽유록, 대관재 몽유록, 강도 몽유록, 수성궁 몽유록’ 등이 있어 꿈을 통한 자기의 성취동기를 맛보려는 소망도 알게 된다. 새벽닭이 울어 그만 꿈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찬 달빛만이 흐릿하게 뜰에 가득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자리 함께한 부로(父老)의 모습 완연히 평상시다웠어라(夢中)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고당에 헌수 드리는 잔 올리었던 꿈을 꾸었더니 / 자리에 함께한 부로(父老)의 모습 완연히 평상시다웠어라 // 새벽닭이 울어 그만 꿈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 찬 달빛만이 흐릿하게 뜰에 가득해라’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꿈속에서 어머님을 뵙다’로 번역된다. 평상시엔 하지 못한 일들이 꿈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다. 꿈은 생시보다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평상시의 소망어린 생각들도 꿈을 통해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어렸을 적에 친구들과 놀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아무 곳에나 실례했던 일이 그냥 이불에 지도를 그려놓았던 경험을 되살릴 필요가 있겠다.

시인은 이런 과거의 일을 생각하면서 고당어르신께 헌수 드리는 소망어린 꿈을 꾸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당에 헌수를 드리는 잔을 올리던 꿈을 꾸었네, 그 자리에 함께한 부로의 모습 완연히 평상시다웠다는 꿈을 꾸었던 일을 시상으로 일구었다. 시적인 이미지로 보아 고당이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화자는 고당을 만나 뵙는 꿈을 깨는 순간의 환희와 같은 생각에 젖었음이란 시상의 주머니는 마냥 넉넉해 보인다. 새벽닭이 울어 그만 꿈에서 깨고 보니, 찬 달빛만 흐릿하게 뜰에 가득하다고 했다. 몽중의 일들이 너무 선명한 가운데 자기 소망을 담아내기에 충분했음을 알게 한다. 꿈은 생시의 소망이 이뤄지는 경우를 잘 담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夢入: 몸을 꾸다. 高堂: 고당, 어머님. 獻壽 : 헌수의 잔. 筵中: 자리 가운데. 父老: 늙으신 아버님. 宛: 완연하시다. 平生: 평생 동안. // 曉鷄: 새벽닭. 催喚: 울기를 재촉하다. 殘魂返: 남은 영혼이 돌아오다. 곧 꿈을 깨다. 寒月: 차가운 달. 籠: 흐릿하다. 滿一庭: 한 뜰에 가득하다. 곧 달빛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