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회담 후폭풍 어디까지 김명진 |
| 2023년 03월 30일(목) 1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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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한일관계 복원에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한 한일정상회담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여론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했지만 취임 1년도 채 안된 대통령이 역사에 평가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이번 외교가 실패임을 자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무엇이든 자신이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결과가 불투명한데도 통 크게 내주는 비외교적 선택을 했다. 현찰을 내주고 지불도 불분명한 어음을 받은 꼴이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이 1%가 되더라도 제3자 배상안을 밀어붙이라고 지시했다. 외교 초보인 윤 대통령이 상황을 주도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일본이 수십 차례 사과했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의 망언은 사과의 10배는 더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기본을 무시한 사과는 고려하지 않은 채 양국관계가 발목 잡히면 안 된다고 미래로 가자고만 하고 있다.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를 누가 반대하나. 이웃에 빗장 걸고 미래로 갈 수 없음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일본이 사과와 피해배상 참여도 없는데 피해자 입장과 국민의 여론을 살피지 않은 덜컥 합의를 지적하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니 뒤늦게 설득에 나서는 건 일의 선후가 한참 바뀌었다.
걱정스러운 건 윤 대통령의 외교실패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다음 달 26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윤 대통령이 한일관계 복원을 급하게 밀어붙이는 건 미국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는 관측이많다. 대중국견제와 북한을 겨냥한 안보대응을 위해 미국이 신속한 한일관계 복원을 바랐다는 것이다. 내달 방미에서 미국 측이 반도체 규제 완화 등 경제보상책을 안겨준다면 윤 대통령이 국내에서 비판 여론 부담은 조금 가벼워 질 수 있다. 방미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 한일회담 여론은 더 차가와 질 것이다.
윤 대통령은 외교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로 한번 적은 끝까지 적으로 남을 것처럼 대응하고 있다. 외교사안은 국내정책과 다르다. 상대국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폭넓은 유연한 사고가 외교정책에 접목되지 않는 한 실패는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최근 부쩍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 같다. 이런 윤석열 개인의 신념이 곧바로 국가의 결단이 된다. 그 신념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국가의 결단 앞에서 무의미하다. 여기에서 대화와 설득은 없다. 오로지 결단이다. 그리고 모든 공무원들이 입을 모아 ‘대통령이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단의 칭송인지 본인들의 책임 회피인지 모호하다.
우리 정부는 이번 방일 정상회담을 알량한 성과로 치장하지 말고, 피해자와 국민의 마음, 그리고 국가정체성에 준 상처를 보듬어 아물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법부와 국내 정치와 대일 외교에 던져진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후 전개될 대일 외교에서라도 이번에 구겨진 우리 위상을 바로 잡고, 실질적인 이익을 확보해 나가기 위해서는 대일 외교의 어려움을 지난 정부의 귀책 사유로 돌릴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비판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총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의 대승적 결단을 이해하기 위해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것은 그동안 협상의 경위와 내용이다. 어려움이나 모자람이 있었다면 솔직하게 밝히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사실에 입각한 진솔한 사과와 가해 기업의 참여라는 일본의 호응이 없는 데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그러한 입장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의지 표명을 해야 한다. 물론 양금덕 할머니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직접 마주해서 밝혀야 의미가 더해진다.
의사결정이 투명하지 못한 정부, 설명을 주저하는 정부, 국가 정체성을 소홀히 다루는 정부는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 물론 투명한 설명이 더 큰 비판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노력에도 일본 측이 무성의로 일관한다면, 국민적 비판은 일본을 향하게 될 것이고, 이는 오히려 대일 외교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우리 정부에 지속가능한 한일관계를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를 지적하는 국민에게 “역사의 큰 흐름이나 국제질서의 판을 읽지 못한다”고 훈계하거나,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고 윽박지른다면 후폭풍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