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97) 오직 한 쌍의 돌부처 같은 사람이 우두커니 서있고 |
| 2023년 04월 04일(화) 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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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傍一孤塚 子孫今何處 (노방일고총 자손금하처)
惟有雙石人 長年守不去 (유유쌍석인 장년수불거)
길가에 있는 외로운 무덤 하나
자손들은 지금에 어디에 있는지
한 쌍의 돌사람만이 떠나지 않는구나.
무덤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현실을 그냥 보아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화장 문화가 우리 생활에 자리 잡아가면서 생장의 의미가 점점 퇴색돼 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묘를 건사하게 써놓고 후진이 관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대체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일 일이다. 시인도 이런 생각을 했으리란 점을 쉽게 발견된다. ‘길가에 있었던 외로운 무덤 하나, 그들의 자손들은 지금쯤은 어디에 있다던가’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오직 한 쌍의 돌부처 같은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고’(路傍塚)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청음, 석실산인, 서간노인이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대제학과 이조, 예조, 공조, 병조 판서를 두루 지냈던 인물이다. 저서로는 ‘야인담록’, ‘풍악문답’ 등이 있고, ‘청구영언’에 그의 시조 4수가 전하고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길가에 있었던 외로운 무덤 하나 / 그들의 자손들은 지금 어디에 있다던가 // 오직 한 쌍의 돌부처 사람이 양쪽에 우두커니 서 있고 / 오랜 세월 지키면서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있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길가의 어느 무덤을 지나며’로 번역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문세가의 집이 크고 대문이 높았지만 그 직에서 물러나면, 한갓 초라한 신세가 된다는 세간의 이야기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떵떵거리던 사람도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면서 세워진 돌만이 그것을 다 말해주고 있다. 한 쌍의 돌부처만이 넋을 잃고 무덤을 지켜주고 있다. 인생무상이다.
시인은 우연히 길가에 있던 권세가의 묘를 지나고 있었다. 돌비가 그의 행적을 말해주고 한 쌍의 석인(石人)이 양 곁을 지키고 있었다는 시낭은 넉넉해 보인다. 길가에 있는 외로운 무덤 하나가 있었는데, 벌쭉하던 그의 자손들은 지금 어디에 있다던가하고 엄히 묻는다. 한 세상을 살다 가면 모두가 허무한 것을 자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시인의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고 있다.
화자는 무덤에 묻힌 자의 자손을 은근히 생각하더니만, 돌부처나마 천년의 사직처럼 묵묵하게 지키고 있었다는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오직 한 쌍의 돌부처가 같이 있어서 오랜 세월을 무심하지 않게 지켜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석물(石物)의 고마움(?)이랄까 무상이랄까.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路傍: 길 곁에. 一孤塚: 한 외로운 무덤. 子孫: 자손. 무덤에 묻힌 그의 자손을 뜻함. 今何處: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 惟有: 오직 ～이 있다. 雙: 한 쌍. 곧 두 개. 石人: 돌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무덤 앞에 세운 것. 長年: 오랜 세월. 守: 지키고 있다. 不去: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