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거부권은 ‘허위 사실’ 근거한 것” 주철현 “‘시장격리의무 면제’ 전후 법 효과 달라” 비판 윤석열 정부, 수정 전 법안 분석자료 근거해 정책결정 농촌경제연구원도 “수정안 효과 분석 못해” 공식 입장 김진수 기자

2023년 04월 09일(일) 19:45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효과 분석 결과를 정책 결정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으나 이는 사실상 ‘허위사실’을 근거로 한 정책 결정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9일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여수갑)에 따르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당초 ‘시장격리의무 면제 조항’이 없었으나 국회의장 중재안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시장격리의무 면제 조항’이 포함돼 법안의 효과가 크게 달라졌으나 윤석열 정부는 당초 ‘시장격리의무 면제 조항’이 없었던 구(舊) 개정안에 대한 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자료를 근거로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실제 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양곡법이 개정될 경우 정부가 개정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양의 쌀을 사들여야 할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1조303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 분석 자료는 국회의장 중재안을 받아들이기 이전의 구 양곡법 개정안의 내용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 법안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날 발언과 달리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반영해 민주당이 수용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벼 재배면적이 전년 대비 증가하면 초과생산량을 매입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시장격리의무 면제 조항’이 추가됐다.

또 쌀 의무매입 기준에 각각 3-5%, 5-8%의 범위를 설정해 정부의 재량권을 허용하는 등 그동안 제기돼 온 쌀 초과 공급 및 쌀값 하락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하는 장치를 추가로 마련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굳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수정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따라 2024년과 2025년에 연이어 벼 재배면적이 증가할 경우 정부의 쌀 시장격리 의무가 면제되고, 정부의 재량으로 시장격리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농촌경제연구원의 동일 자료 분석결과에 따르면, 2023년 70만3천㏊였던 벼 재배면적이 2024년에는 70만4천㏊, 2025년에는 70만5천㏊로 증가하는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더욱이, 농촌경제연구원도 최근 국회의장 중재안이 반영된 ‘수정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효과 분석은 별도로 시행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주철현 의원이 ‘국회가 의결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효과 분석을 진행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자료요구에 대해 “수정안 중 벼 재배면적이 전년 대비 증가하면 초과생산량을 매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당해 수급 상황에 따른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격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므로 모형상으로 격리 여부를 특정할 수 없어 분석을 시행할 수 없었다”는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와 국회 대정부질문·답변에서 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 결과를 수차례 인용하고,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재의요구서에도 이를 거부권 행사의 주요 근거로 제시한 상황에서 정작 농촌경제연구원이 상충되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주철현 의원은 “총리의 담화문과 국회 답변, 대통령 재의요구서에 허위자료가 담겼다는 계속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존 분석과 결과적으로 동일하다는 엉뚱한 해명만 반복하고 있다”면서 “분석을 수행한 연구원이 개정안의 효과분석이 불가능하다고 공식 답변한 만큼, 이번주 농해수위 현안질의를 시작으로 허위 자료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근거로 이용된 경위를 낱낱이 밝히겠다”고 강조했다./김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