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한 아이도 버리지 않는다 - 제43회 장애인의 날을 맞으며 / 수필 - 김양화 |
| 2023년 04월 10일(월) 19:18 |
|
‘더 빨리 흐르라.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마라. 풀과 들, 새와 바람 그리고 땅 위의 모든 것처럼 강물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장 루슬로의 ‘또 다른 충고들’ 속 구절이다. 그것은 교직원들이 서로 뜻을 모아 정하고, 1년 동안 걸어가기로 한 ‘성찰의 길’이었다. 학생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진정성 있게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모인 학교의 오솔길이 플래카드 위에서 맑은 봄 하늘로 파랗게 열려 있다.
배드민턴 하는 장애 학생들을 보며 플래카드를 가만히 다시 보았다. 특수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 현장에 참 잘 어울리는 내용이다. 장애 학생들의 등을 떠민다고 발달 속도가 갑자기 빨라질 수 있는 일인가.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그들에게 더 빨리 가라고 재촉할 필요가 없다. 그들도 나름대로 학교 친구나 건강한 형제들 속에 섞여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이 떠밀리지 않아도 그들 역시 때때로 숨이 차고 벅찬 일상이다. 비록 발달과 변화가 더딜지라도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격려해주는 일이 소중하다. 특수교육 여정 속에서 힘껏 학교생활에 참여하며, 장애 학생도 서서히 성장하고 긍정적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고맙다”고 하신 어느 여선생님의 칭찬이 진달래 화전만큼이나 정겹게 다가온다. 여학생 한 명이 교실에 들어오더니, 어느 선생님께서 숙제를 잘 해와 “고맙다.”고 하셨다며 방긋 웃었다. 그 여학생의 아버지께서는 식물 세포 그림을 베껴 그린 후 색칠하는 숙제를 딸과 더불어 해서 보내주셨다. 또 다른 여학생과 남학생도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숙제를 멋지게 해왔다.
사실 특수교육 현장에서 장애 학생이 숙제를 안 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모든 교과의 숙제를 빠짐없이 다 챙겨주는 일도 쉽지 않다. 다만 서툴게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의 숙제라도 해가지고 온다면, 장애 학생의 수업 참여 행복감과 자신감은 더욱 증대될 수 있을 것이다.
시 수업 때도 마찬가지다. 장애 학생 중에는 수업 때 일반 학생들과 같은 속도로 글씨쓰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 수업을 즐겁게 하고 시를 베껴 쓴 후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는 장애가 없다. 장애 학생들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기에 틈틈이 시를 낭송하고 베껴서 파일에 모아둔다. 그리고 시 수업이 든 날, 학생들이 시 자료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하여 생각 나눔을 하고 친구와 어울리도록 이끈다. 장애 학생들이 시를 낭송하고 상상 나라로 걸어 들어가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운동장 가에 서서, 장 루슬로의 ‘또 다른 충고들’을 마음에 담는다. 그림 그리다시피 하는 자녀의 손을 잡고 글자를 삐뚤빼뚤 써서 보내주시는 학부모님의 마음에 깊은 애정이 간다. 장애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숙제가 많다. 부모님과 연계해 힘을 합해도 수행하기 어려운 과제들도 있다. 교과수업 내용도 난이도 때문에 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특수교육이 양적으로 확대되었지만, 장애 학생의 진정한 교육과정 통합은 요원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풀과 들, 새와 바람 그리고 땅 위의 모든 것처럼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교육의 길 위에 ‘한 아이도 버리지 않는다.’는 아름다운 마음이 살아 움직인다. 장애를 공감하며 봄볕 같은 눈길을 보내주는 이웃들 덕분에 정말로 한 아이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김양화 약력>
▲평화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한국문인’ 수필 등단
▲천강문학상 동화 수상
▲수필집 : ‘사랑엔 장애가 없다’
▲동시집 : ‘메뚜기 교실’, ‘숲의 초인종’
▲광주선우학교 특수교사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