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풍자 on society 선악의 경계를 허문 비판적 웃음 사회 구조 모순 비판하는 날카로운 풍자의 역할

2023년 04월 13일(목) 19:34

페트루스 作 ‘하인리히 6세에 바쳐진 책의 삽화’ <위키피디아 검색>

르네 앙투안 우아스 作 ‘미네르바(아테나)의 탄생’ <위키피디아 검색>

누구나 한 번쯤은 TV에서 ‘미스터 빈’을 보고 폭소를 터트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생김새는 어른인데 괴짜 같은 표정을 짓고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어설픈 행동을 하며 일상을 비틀어 웃음을 유발하는 영국 코미디언 ‘미스터 빈’은 그야말로 풍자의 원조 격이다.

풍자에는 몹시도 관대한 영국인에게 영국사람 특유의 체면 차리기를 통렬하게 비판해 보이는 ‘미스터 빈’의 풍자는 웃음을 유발하는 다양한 코드들 덕택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게다가 근래 매우 핫한 TV 프로그램 SNL만 봐도 사회적인 이슈는 물론 정치인들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해내는 출연자들의 모습들에 웃음과 폭소는 당연한 절차처럼 따라온다.

이처럼 풍자란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유머와 함께 빙 둘러 비판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이어져 온 표현방식 중 하나’이다.

특히 해학(諧謔)이 ‘동정적 웃음’이라면 풍자(諷刺)는 ‘비판적 웃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이나 사회의 악덕, 모순, 어리석음을 넌지시 비판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을 활용해 웃음을 유도하고 있어 그렇다 하겠다.

또한 풍자의 목적은 ‘세상의 사악한 것들을 비판하기 위함이며, 잘못된 것을 돌려서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역할의 선두에는 주로 예술가들이 있어왔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남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먼저 읽어내고 사유하며 민중을 이끌어 내는 역할이 바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이기에 그래왔다.

“시(예술)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고귀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보자면 시가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particular)을 말하는 역사보다 보편적인 것(universal)을 언급하기에 역사나 철학보다 진지하고 귀하다라는 것이며, 따라서 예술가들의 임무도 더욱 막중해짐을 알 수 있다.

이런 풍자도 특히 유행하는 시기가 있는데 이는 사회 내부의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는 시기와도 거의 일치한다. 왜 그랬을까? 그림 속에서 풍자를 다뤘던 화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 보자.

먼저 볼 그림은 풍자화가로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이다.

그는 주로 산업 혁명기 갑작스러운 사회적 변화들로 발생한 빈부격차로 고된 노동과 가난에 허덕이던 노동자들의 삶을 그림을 통해 그려낸 위대한 화가이기도 하다. 특히 그들의 삶을 아프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았다는 점에서 도미에는 단순한 화가를 넘어선 인간애를 갖춘 위대한 예술가라고 평가되고 있다.

도미에의 예술가로서의 이런 면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날카로운 풍자로 시대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도 빛이 난다.

유명한 작품 가르강튀아를 보자.

도미에 作 ‘가르강튀아’ <위키피디아 검색>

필자는 중학교 사회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는 작품이기도 한데, 탐욕스러운 거인의 입으로 서민들에게서 짜낸 금은보화가 줄줄이 들어가고 있는 장면이 묘사돼있다.

특히나 왕의 머리를 멍청이를 뜻하는 서양배처럼 묘사해 권력을 희화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언뜻 보아 현재 풍자만화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흑백톤의 작품이지만 당시 파장력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당시 특권의식에 가득 찬 루이 필리프가 서민들을 압박하며 부자와 귀족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자 시민들은 점차 지쳐갔고 도미에는 세태를 비판하는 그림을 그렸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2월혁명이 일어났는데 위 그림이 이에 단초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그림을 보기 전 질문 한가지, 독자들은 운명을 믿는가? 그리고 그 운명은 판에 박히듯 정확히 설계돼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완벽하게 믿고 있을 것이며, 인류가 신(神) 중심의 사회를 겪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며 깨닫게 된 지식들과 현재를 살고있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다시피 매 순간순간에 선택의 결과로 달라지는 미래의 결과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 같은 내용을 풍자하는 작품을 한 예로 살펴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에게 페트루스라는 이가 황제에게 바친 책에 등장하는 삽화를 보면 가장 먼저 왼쪽 위 대좌 위에 앉은 하인리히 6세와 그 뒤로 선 일곱 명의 인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오른쪽 하단 아래에는 운명의 여신이 돌리고 있는 수레바퀴에 짓눌려 고통을 받고있는 인물들도 함께 등장하는데 도대체 그들은 누구일까?

먼저 상단에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글씨들을 보면 용기(fortitudo), 정의(justitia), 절제(temperantia), 지혜(prudentia)라는 의미로 합하면 고대 윤리론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네가지 덕성들(virtutes)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아래는 이와는 반대로 로마신화에만 등장하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있다. 원래는 행운의 여신이었지만 변덕스러운 면모 때문에 나중에는 운명의 여신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이 여신이 굴리는 수레바퀴 아래 운명의 신의 힘을 빌리려 했던 악인이 깔려있는 모습이다.

물론 이 그림에는 승자 하인리히 6세에 대한 찬양이 담겨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운명의 여신이 지배하는 부당한 현실에 대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명확히 전달되고 있다.

운명을 뜻하며 동시에 인간의 물질적 부와 행운을 관장하는 여신 포르투나는 한 손에는 승리의 트로피를 들고 다른 손에는 온갖 징벌 도구들을 들고 있다. 결국 인간의 물질적 성공은 포르투나의 강압적인 결정에 따랴야 한다라는 이야기다.

이런 이상한 논리가 만든 현실에 갭을 느낀 이는 비단 현대인들만이 아니다. 문명이 발전하기 이전 힘없이 태어난 이들에게는 불평등의 빈도수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특히 신을 중심에 둔 사회일 경우 이 확률은 더욱 확고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을 것이다.

결국 운명의 여신에 대항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내용의 이 작품에는 정의롭지 못한 운명의 여신을 비꼬며 이 운명의 여신에 당당히 맞설 지혜를 갖출 것을 말하고 있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자의 것이다. 다시 말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지만 탁월한 덕성들에 의해서, 특히 지혜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지 바꿔 낼 수 있다는 것…. 독자들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풍자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며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주 여러 가지 일들과 감정들이 머릿속을 교차해 힘들게 쓰기는 했지만,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삶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 것과 담대해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보는 계기가 돼 보람됐다. 늘 그랬듯이 화이팅!

<이현남·전남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