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의 광주땅 '최초' 이야기](86)신발점

1910년대 근대 신발상점 남문통 상전·북문통 관원
신창동 영산강저습지 출토 ‘신발목형’ 가죽신 제작 사용 추정
1950년대 중반 충장로 양화점 런던·태양·동양·신성 등 성업
노틀담제화점, 1970·80년대 호황기 땐 한달 1천켤레 팔기도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2023년 04월 13일(목) 20:09
2018년 기준 광주 가죽신발·가방제조업체·종사자는 41곳 197명(광산구 4곳 101명·북구 17곳 57명·동구 12곳 22명·서구 8곳 17명)이다.

신발산업진흥센터에는 유통업체로 각화동 대영신발을 포함해 충장로 진수, 용봉동 슈테크, 쌍촌동 아이니걸이 뜬다. 2022년판 광주전화번호부 신발판매란에는 동구 금남로 지하상가 왼발오른발을 비롯해 86개가 수록돼 있다.

광주 최초 신발기록은 1992년 신창동 영산강저습지에서 나온 신발목형이다. 길이 26.6㎝ 신발골은 그간 민속자료로 전하는 짚신골과 유사하나, 발등에서 신코 부분으로 이어지는 경사로 볼 때 가죽신을 만드는 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 신창동 영산강저습지에서 발굴된 목형 신발골(광주신창동저습지유적 1997).

근대 신발상점은 1910년대 남문통 상전(上田)과 북문통 관원(管原)이다. 1930년 자료에 신발장·류로 북문통 고전(高田)과 동문통 약송(若松), 양화로 수기옥정 서한권·최동섭·오태환이 나온다. 고무신 상회로는 북문통 김세라, 남문통 박동춘, 수기옥정 모전(牟田)·김진국·서봉진, 송정리 고목(高木)이 들어있다.

땅이력서에 충장로3가 3번지 35평은 1920년대 지응현 땅이다가 1930년 사정 131번지 최남립, 1932년 서한곤터가 된다. 김세라가 김세상회를 운영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호남동 12번지 72평은 1935년 국유지(광주면)였다가 1933년 강본(岡本), 1935년 사정 131번지 최한영이 소유한다.

봉선동에 거주하고 있는 손녀 최은정(84)은 한국전쟁 때 폭격에 대비 공원다리 근처 양철지붕집 땅속에 가마니로 포장해 신발을 묻었다고 한다. 당시 고무신 바닥에는 ‘만월’과 ‘천일’ 마크가 새겨져 있고, 총판점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1953년 전남연감에 학동 750번지 천일고무공업주식회사 광주공장이 수록돼 있다. 사장은 경상남도 김경준, 공장장 김중태, 지배인 최한영으로 표기됐다. 본래 종연방직터로 1950년대 말 천주교회가 인수한다. 남광주역 건너편 학동 937번지에는 남일피혁(윤승호)도 위치했다.

고무공업사는 누문동 217번지 대양(차행칠), 서동 19번지 대성(김문오), 불로동 17번지 합동(서용규)이다. 피혁사는 누문동 236번지 남선(김두하), 백운동 103번지 서광(백오봉)이며, 충장로4가 7번지 화신백화점에는 양화부가 있었다.

1950년대 중반 문헌에 충장로 양화점으로 1가 1번지 런던(배남식) 2번지 동양양화운동구(문제승), 태양(김옥순), 동양(김학종), 현대(박순성), 신성(문명술), 2가 2번지 남성(김우갑), 대성(주종순), 형제(장점환), 태화고무(이두천), 3가 중앙(서상열), 세신(문형주), 광성(서동준), 26번지 남창피혁(김준실), 4가 KS(안승호), 5가 금성(전조용), 삼양(임점동), 대신(정규준)이 있다. 금남로4가 동인(서용수), 남동 105번지 동광(김석환), 광산동 76번지 수원(백영근), 황금동 순창(박순성)도 있다.
1950년대 태양양화점 광고(전남일보1955.10.18).

1970년대 상공연감 관련업체, 지번·상호(대표)를 나열한다. 양화점은 충장로1가1 워커힐(지양춘)·2가3 뉴욕(김채현)·10 미진(김경열)·21 국제(남태룡)·4가13 리빙(김유출)·3가9 문희(문남식)·16 분홍신(안재석)·4가17-4 핑크여화(김용선)·18 아폴로(왕순장)·5가24 형제(장영복)가 있다. 피혁점은 궁동68-2 금호(백금복)·금남로4가55 유신(임영수)·5가85-1 제일(김상기)이 있다.

고무신은 구동4-3 태화(양복규)·충장로1가12 영신(이정애)·5가76-2 전남(송주호)·불로동389 동양광주직매소(박순배)·대인동11-3 국제(송경신)·82 동신(박순덕)·182 천일(김진팔)·327-5 대인(조규근)·계림동307 태화(진옥순)·386 담양(국석섭)·금동45 말표(진삼호)·211 삼광(유효엽)·황금동2-5 삼화광주직매소(강창남)·양동복개상가나동9 양동(손홍준)·153 만태(서정래)·108-1 신광(김기태)·산수동494-1 산수(국정여)다.
대인동 구찌니수제화집 남성화(향토지리연구소2023).

최근 광주를 방문한 전두환의 손자 우원씨가 5·18민주묘역을 참배하는 과정에서 옷을 벗어 희생자묘비를 닦은 주인공이 5·18 최초 사망자인 故 김경철 열사다. 어릴 때부터 청각장애인였던 그는 광주 국제양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5·18 당시 제일극장 앞에서 계엄군에 의해 29세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충장로4가 37번지 나주임씨광주화수회 목판이 걸린 노틀담제화점 임종찬 대표는 1951년 곡성 고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기술을 터득해 1973년 충장로에 입성, 현 가게는 세 번째 터이다. 그는 1970·80년대가 호황기로 한 달에 1천여켤레를 팔기도 했다고 소회했다.

충장로4가 노틀담제화점과 내부 모습(향토지리연구소2023).

학동 856-2번지 원지교 북쪽 남문로변 극동제화 박병출(69)씨는 10대에 나주읍내에서 시작, 1988년 광주로 들어와 수제화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가죽원료 공급처로 금남로4가 1-2번지 제일비조(김충해)가 유일이다.
학동 극동수제화(향토지리연구소2023).

충장로3가에서 1가 쪽에는 S마켓메가슈플렉스, Come As You Are, JD, ABC마트그랜드스테이지, Inside My Folder, 금강 신발가게가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동명동 푸른길로 접어드니 산보객이 많다. 나무전거리로 접어들면 264-3번지에 유홍식수제화명장1호가 위치하고 있다.

2011년 정영옥씨가 광주·전남지역 대학생 600명을 대상으로 신발착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가장 자주 싣는 신발로 남·여학생들 모두 운동화를 꼽았다. 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26개 족골이 인대로 강하게 결합돼 제2심장·소뇌라고 불리우는 발을 보호해주는 것은 신발이다.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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