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D 버추얼 스튜디오 등장과 디지털 자산의 가치 / 진호림

2023년 04월 19일(수) 19:36

진호림 ㈜리얼프로텍 대표이사

LED 버추얼 스튜디오가 보급되면서 영상 콘텐츠의 제작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LED 버추얼 스튜디오에서는 LED 디스플레이를 이용하여 배경 영상을 직접 보면서 촬영할 수 있다. 그린스크린을 이용한 촬영과 달리 자연스러운 연기와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실내에서 제작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날씨나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많은 제작인력이 촬영 장소를 옮겨 다니는 불편함도 없다.

LED 버추얼 스튜디오를 이용한 촬영은 미리 만들어진 배경 영상을 활용한다. 배경 영상은 현실 세계의 모습을 영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거울 세계), 현실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전자는 주로 다큐멘터리 제작에, 후자는 스타워즈 만달로리안과 같은 영화나 드라마 제작의 배경으로 활용된다. 콘텐츠에 따라서 거울 세계와 가상 세계가 동시에 활용되기도 한다.

거울 세계나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만들 때 필요한 요소들을 디지털 자산, 즉 에셋(Asset)이라고 한다. 에셋은 자연이나 건축물, 나무, 사람 등과 같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도 있고, 제작자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형상이나 가상의 물체가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직접 만들어 쓸 수도 있고, 미리 만들어진 것을 사서 쓸 수도 있다. 이 에셋은 영상 콘텐츠뿐만 아니라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예술작품 등의 제작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에셋은 콘텐츠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잘 만들어진 에셋은 시청자에게 더욱 생생한 경험을 제공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 경험을 악화시키고, 콘텐츠의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에셋은 대상에 대한 스캐닝과 3D 모델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전문적인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며,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콘텐츠 제작 비용의 상당 부분이 투자되기도 한다. 그러나 에셋이 만들어지면 프로덕션 과정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무등산의 서석대와 입석대를 에셋으로 만들고, 활용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 봤다.

서석대나 입석대 에셋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고 스캐닝하여야 한다. 스캐닝은 주로 레이저를 이용하는데, 드론을 날려 위아래와 좌우를 번갈아 가며 형태와 표면을 측정한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이용하여 3D 모델링을 하는데, 만들어진 돌기둥이나 구름, 나무, 숲 하나하나가 에셋이 된다.

배경 영상을 만드는 일은 이 에셋을 배치하는 과정이다. 에셋을 밀고 당기고, 옮겨 가면서 실제와 똑같이, 또는 상상한 대로 만들어 간다. 이때 일반 영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깊이 공간, 가상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배경 영상을 만드는 핵심이다. 이 영상을 LED 디스플레이에 보여주면서 촬영하면 스튜디오에 있는 연기자가 가상의 공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영상으로 표현된다.

입석대 돌기둥을 돌아서 등장하는 인기가수의 오프닝 영상을 만들 수도 있고, 서석대를 돌계단처럼 밟고 내려오면서 연설하는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다. 해 질 녘 수정처럼 빛을 발하는 서석대와 붉게 타오르는 철쭉군락지 사이에 설치된 가상무대에서 산상 오페라 페스티벌을 연출할 수도 있다. 접근성 문제나 훼손 우려 때문에 달고 다녀야 했던 촬영 제약의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에셋은 재활용이 가능하다. 스토어를 이용해 판매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제작자들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또 무료로 배포할 수도 있다. 지역의 콘텐츠 제작자나 중소 제작업체들은 참여 기회를 얻게 되고, 더욱 창의적인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또 지역의 자연과 문화유산, 사라져버린 역사를 복원하여 보급하면 지역을 알리는 수단이 된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아침의 나라’가 게임의 배경이 되고, 초가와 기와집, 장구, 북, 꽹과리 소리가 어우러진 배경과 음악이 해외 이용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게임회사들이 한국의 전통과 문화 요소들을 에셋으로 만들어 보급한 결과다.

LED 버추얼 스튜디오의 등장은 영상 콘텐츠 제작 산업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에셋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에셋의 활용과 가치가 높아지면서 이를 만드는 기술과 인력의 수요 또한 늘어나고 있다. 무등산의 서석대나 입석대와 같은 자연유산이 블록버스터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의 배경으로 다양하게 사용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