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념의 시간 / 함진원 |
| 2023년 04월 23일(일) 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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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하는 시간이 절절해진다
입은 있어 무엇 하나
3·1, 4·3, 4·16, 4·19, 5·18
마음 모아 민주의 잎눈 뜨고
그 사이사이 억울한 죽음 영실에
올라 목청껏 울부짖던 피맺힌 소리
다랑귀 오름에서 마음 쓰던 영혼은
성자의 소리 들으며 갈참나무 아래 잠든다
(시집 ‘눈 맑은 낙타를 만났다’, 푸른사상, 2023)
[시의 눈]
한 동네에 이웃한 박불의 씨와 김정의 씨가 또 갈라섭니다. 화해한 적 없지요. 불의 씨가 이제 그만 하라며 꼬드기는 건 늘 봄철입니다. ‘상관하지 마소!’ 화들짝 정의 씨는 불의 씨의 팔을 팽개칩니다. 그 능구렁이 태도가 정의 씨에겐 참 싫습니다. 오늘도 정의 씨는 어린 영정 앞에 묵념 올리며 눈물에 젖습니다. 한때 불의 씨를 설득해 함께 하자 했지만 무슨 연고인지 영 듣질 않았습니다. 한데, 정의 씨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습니다. 이제 불의 씨는 정의 씨와 껄끄러운 관계를 잊지요. 그런 4월 어느 날, 불의 씨는 우연히 정의 씨가 살던 빈집에 갑니다. 아, 식탁 달력에 4·3, 4·16, 4·19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선연해 있습니다. 그 아래는 교복 입은 아이의 영정과 향로가 놓여 있습니다. 그때입니다. 갈참나무 아래 누워있는 정의 씨 무덤 위로 쌀밥나무 흰꽃이 뚝 뚝, 떨어집니다. 불의 씨는 얼른 신문지로 사진을 덮어버리고 도망치듯 나옵니다. 함진원 시인은 함평에서 나 199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집 ‘인적 드문 숲길은 시작되었네’(2003) 등을 냈습니다. 그는 곡진한 서정과 핍진한 정의의 이미지를 시에 담으며 치유의 쓰기를 오래 펴 왔습니다.<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