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지사, ‘군공항 이전’ 덕담 속 미묘한 기싸움 姜시장 “을의 입장, 갑의 처분 기다려” 전남 결단 우회적 요구 金지사 “기피시설, 통 큰 보따리 달라” 지원책 우선 제시 강조 팽팽한 줄다리기 예고…“변죽만 울리지 말고 협의 시작을” 여론 김재정 기자

2023년 04월 23일(일) 20:28

광주·전남기자협회 체육대회가 지난 22일 오전 호남대학교에서 열린 가운데 강기정 광주시장(왼쪽)과 김영록 전남도지사(오른쪽)가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광주전남기자협회 제공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 국회 통과 이후 광주시장·전남지사의 만남과 적극적인 협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광주·전남기자협회 체육대회에서 조우한 강기정 시장과 김영록 지사가 ‘군공항 이전’을 놓고 덕담을 주고 받으면서도 미묘한 기(氣) 싸움을 벌였다.

특히 강기정 시장이 “을(광주시)의 입장에서 갑(전남도)의 처분을 기다린다”며 전남지역의 결단을 우회적으로 요구한 반면, 김영록 지사는 ‘기피시설’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통 큰 보따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광주지역의 지원 대책 우선 제시를 강조해 향후 군공항 이전 논의 과정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예고했다.

강기정 시장과 김영록 지사는 지난 22일 호남대학교에서 열린 광주전남기자협회 봄 체육대회에 참석, 인사말을 통해 군공항 이전과 관련한 각자의 입장을 피력했다.

먼저 단상에 오른 강기정 시장은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 뿐만 아니라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는 전남에서 손을 잡아 주지 않으면, 거들어 주지 않으면 1㎜도 움직일 수 없다”며 “그런 점에서 광주는 을(乙)의 입장이고, 어떻게 전남에 잘 보일 것인지, 김영록 지사에게 잘 보일 것인지 고민하는 을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고 자세를 한껏 낮췄다.

이어 강 시장은 “갑(甲)의 처분 만을 기다리겠다”며 “김영록 지사님 잘 부탁드린다”고 김 지사에게 ‘공’을 넘겼다.

광주시가 구체적인 지원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 시장이 ‘갑을 관계’로 규정하고 ‘갑의 처분을 기다린다’고 언급한 것은 사실상 김 지사를 비롯한 전남지역의 결단을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김영록 지사는 광주·전남 상생을 강조하면서도 ‘통 큰 보따리’가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지사는 “화순 동복댐 수원지 관리 문제 해결을 위해 광주시에서 200억원을 내놓겠다고 ‘통 크게’ 약속했고, 혁신도시 공동발전기금 출연 문제도 광주시와 나주시가 ‘통 크게’ 합의해 윈윈할 수 있었다”며 “강 시장이 진정으로 광주·전남 상생의 물꼬를 터준 것으로 본다”고 치켜 세웠다.

김 지사가 그동안 광주시의 상생 기조를 언급하며 ‘통 크게’란 표현을 수차례 사용한 것은 강 시장이 특별법 통과 직후 전남의 ‘통 큰 결단’을 요구한 것에 빗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이어 김 지사는 “저(전남)에게 갑이라 하셨는데 저는 그동안 항상 큰 틀에서 우리 광주시민들을 위해 군공항 이전 문제는 전남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하고 있다”며 “광주와 전남이 이 문제를 상생 차원에서 시·도민들이 불편이 없도록 해결해야 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특히 김 지사는 “전남 입장에선 어찌됐건 소음이 발생하는 기피시설을 받는 만큼 크게 우려하는 도민분들이 많다”며 “광주시가 적극 도와주고 ‘통 큰 보따리’를 내놓아야 (전남에서도) ‘통 큰 결단’을 할 수 있다”고 광주시에 구체적인 지원 대책 제시를 요구했다.

대신 김 지사가 이날 인사말에서 최근 강조해온 ‘광주 민간공항의 무안공항 이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나름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공항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연일 이어지고 있는 광주·전남 간 기싸움에 대해 지역민의 시선이 곱지 만은 않다. 양 시·도지사가 신경전을 벌이며 변죽만 울릴게 아니라 최대한 빨리 만나 진정성 있는 협의를 통해 군공항 이전이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