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장날의 국밥 한 그릇 / 수필 - 최상일 |
| 2023년 04월 24일(월) 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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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곳은 송정리에서 바라다보이는 강 건너의 평화롭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마을이었다. 어느 날엔 아버지가 소를 끌고 송정리 우시장으로 소를 팔러 가시기도 하였다. 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버지 뒤를 쫄래쫄래 허락도 없는 동행을 자처했다. 물론 내용적으로 많은 기대를 안고 가는 거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의 거간이 성사된 후에 아버지 표정 속에 내 기대의 양이 정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밝은 표정 속에선 맛있는 한 그릇의 장터국밥과 시장에서 빛이 나는 새 운동화와 달콤함까지 포함된 사탕 봉지들까지…. 그러나 어두운 안색일 때는 따라나설 때의 설렘은 한껏 정리해 넣고 쥐도 새도 모르게 강 건너 집으로 내달음질 치고 마는 것이다. 왜 그 시절의 아이들은 떼쓰는 것보다 먼저 성장해 버렸는지? 시대적인 배경이 우선 배불리 먹는 것이 일차적인 욕구여서 모두들 성급하게 철이 들어버렸는지? 물론 그런 참을성이 살아가면서 자산이 될 때가 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나는 중학교 때 자전거를 타고 송정중학교에 통학을 했다. 비행장 앞의 다리를 건너 친구들과 조잘대면서 다닐 때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대보둑 아래에는 그 시절엔 드물게 집안에서 보호받는 청순하고 어여쁜 여학생이 한 명 살았다. 좀 짓궂은 어느 아이는 관심 표명으로 그 아이에게 돌을 던지고 가방을 빼앗아 저만치 던져버리곤 하였다. 어느 날 그 아이의 아버지께 걸려 우린 죽어라 줄행랑치고, 돌에 걸려 넘어지고 그래서 죽도록 얻어터지고….
요새 같으면 서로가 경찰서행이고 혼란스러웠을 텐데 그 시절엔 그런 사건들은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순박하였고 인간미가 넘치고 넘치게들 살았으니까….
아! 지금도 풀리지 않은 아이러니한 일이 있었는데 꿈속의 일이었는지? 분명 친구들과 사탕을 사서 입에 물고 서창 입구로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둠이 깔린 하굣길) 어느 연세 드신 할아버지 한 분이 다리가 아프니 좀 태워 달라고(자동차도 아닌 잠바리 자전거에) 해서 그때도 덩치가 어른만큼 컸던 내가 그 노인네를 태우고 재잘대면서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달리던 어느 순간 뒤에 앉았던 어르신이 보이지 않아 오금을 저리게 만든 사건. 그때를 회상하면 우리들은 도깨비의 장난이었나 하면서 의구심을 제기해본다.
세월은 또 흘러 그때의 그 친구들은 하나둘씩 망각의 다리를 건너가 버린 친구들도 생기고…. 억새풀 마냥 머리엔 희끗희끗 흰머리가 많아져서 과학의 힘을 빌려 색칠하고 다니는 사람들 천지이고 대부분 몸 한두 군데가 아프다는 말이 만나면 인사가 돼버렸다.
요새도 나는 내 마음이 헛헛해지고 그리움이 밀려오면 송정리 장터 국밥집에 가곤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국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나면 비로소 가슴이 한가득 채워진다.
맛있는 것 천지이고 그 맛있는 음식들을 언제든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현실이 됐는데도 왜 그 시절의 음식이어야만 하는지! 그건 아마도 채워지지 않았던 갈증이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차를 몰고 송정리 장터 국밥집으로 향하고 있다.
<최상일 약력>
▲서석문학 등단
▲광주문인협회 이사
▲시인, 수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