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 냄새와 악취 / 오은하 |
| 2023년 04월 25일(화) 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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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의 일이다. 초저녁부터 오기 시작한 진통은 한밤중이 지나고 다음날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아직 주변은 캄캄한데 갓 구운 빵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병원근처에 꽤 유명한 빵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새벽에 빵을 굽기 시작한 것 같았다. 진통으로 식은땀은 줄줄 흐르는데 코끝에서 맡아지는 빵 냄새는 나에게 향기가 아니라 악취였다.
악취방지법은 2004년에 제정됐다. 악취방지법에서는 악취를 “황화수소, 메르캅탄류, 아민류 그 밖의 자극성이 있는 물질이 사람의 후각을 자극해 불쾌감과 혐오감을 주는 냄새”로 정의하고 있다. 악취는 소음·진동과 함께 대표적인 감각공해로 그 오염물질이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또한 국지적·순간적으로 발생하거나 소멸하는 특성이 있어 관리하고 저감 대책을 수립하는데 어려움이 매우 크다. 기존의 대기환경보전법에서 대기오염 관리차원에서 다루던 악취를 그 특성에 맞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악취방지법이 탄생한 것이다.
빵을 좋아하는 필자가 극심한 진통 중에 맡은 새벽에 갓 구운 빵 냄새를 악취로 느끼거나, 퇴근 길 구수하게 풍겨오는 근처 식당의 숯불 갈비 냄새가 매일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는 근처 동네 주민에게는 견딜 수 없는 악취로 삶의 질을 저해하는 환경오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악취는 지역특성, 생활수준 등 사회·문화적인 특성과 성별, 연령, 건강상태, 음식물에 대한 기호 등 개인적인 특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같은 악취강도에도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이 악취를 느끼는 정도는 10배 이상의 차이가 나기도 하는데, 2010년도 7천여건이었던 악취 민원 건수는 2020년대에 3배 이상 증가한 2만5천건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악취는 온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통상의 악취물질은 26-30℃에서 강한 영향을 미치며, 온도가 낮아질수록 악취의 세기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습도의 영향도 커서 60-80% 상대습도에서 더욱 민감하다. 즉, 겨울철보다 온도가 상승하는 요즘 악취로 인한 불편은 가중된다. 게다가 기존에는 산업단지, 돈사, 폐기물처리시설 등 악취배출시설이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었는데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택지 및 공장용지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난개발로 산업단지와 주거지가 근접 또는 혼재해 악취에 취약한 주거지 주민의 불편이 증가하게 됐다.
악취의 세기와 공기 중의 악취물질 농도사이에는 대수관계가 성립하는데 이를 웨버-페히너(Weber-Fechner)법칙이라 한다. 악취세기를 1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냄새물질 농도를 1/10(90% 제거)로 낮추어야 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숯불 갈비 사장님이 주변 악취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50% 효율을 갖는 악취방지 필터를 설치했다고 치자. 동네 주민들이 느끼는 악취세기는 감소했을까? 아마 뚜렷이 느끼지는 못한다. 적어도 90 % 이상의 효율을 가진 방지 필터를 설치해야 악취가 감소됨을 느낄 수 있다.
정부는 제2차 악취방지종합시책(2019-2028)을 시행해 쾌적한 생활 환경조성에 노력하고 있다. 사업장 설치단계부터 악취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사전예방적인 관리와 축산악취, 하수도 악취, 음식물 악취 등 악취배출원에 맞는 맞춤형 관리를 추진 중이다. 또한 최신기술을 활용한 악취감시 기법을 적극 도입하여 적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민들은 효과를 체감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지만, 악취의 근본적인 관리방법은 무엇일까? 사업자와 악취를 관리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인식전환과 함께 악취물질의 존재여부가 아니라 불쾌감을 느끼는가 여부가 민원해소의 핵심이다. 이는 불신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이다. 악취문제를 개인의 예민함 또는 민감성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악취관리자의 적극적인 저감 노력과 공감을 통한 해결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빵 냄새에 안 좋은 추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빵을 즐긴다. 좋은 기억이 나쁜 기억을 덮는 상쇄기능이 작동했을 것이다. 악취문제는 어렵다. 그러나 신뢰와 협력, 배려 등과 같은 순기능이 우리 사회에 작동될 때 누구나 쾌적한 생활환경에서 사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