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꿈꾼 미륵세상 / 탁인석
2023년 05월 16일(화) 19:50
탁인석 에세이스트
5·18 당시 젊은 세대가 이제는 60-70대가 됐다. 세월이 40년을 넘겼으면 그 상처가 아물고 미래를 향해 새살이 차고 새 생명을 키울 만한데 5·18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세대를 30년으로 봤을 때 세대교체가 되고도 남는 세월인데 말이다. 지금의 20대에게 5·18을 물으면 구체적 사건이나 정황을 알 리가 없다. 그럼에도 5·18이 끝나지 않은 이유가 뭘까. 5월이 오면 시민들은 묘소를 찾고 매스컴은 특종으로 다루고 정치권은 여·야 가리지 않고 추모행렬에 들어선다. 대한민국 국가는 영원할진대 우리 국가를 꾸려가는 한 5·18은 계속될 것이다. 왜 그럴까. 필자는 역사적 근원에서 묻고 그 답을 찾아봤다.

얼마 전 충청도에 갈 일이 있어서 일부러 부여를 찾았다. 부여가 어떤 곳인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고 의자왕이 이를 지키려고 생사를 걸어 고군분투했던 곳이다. 백제는 1세기경 만주의 고대국가 부여에서 비류나 온조 등의 세력에 의해 창건된 후 700여년 가까이 유지해 왔다. 필자가 부여를 찾았던 건 10대 후반 무렵, 무전여행으로 낙화암을 둘러봤던 추억을 더듬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한마디로 부여는 총체적 실망이었다. 부여읍이 시(市)로 승격된 것도 아니고 그 어느 곳에서도 활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세계로 잘도 뻗어가는 데 부여는 딴나라처럼 적막했다. 더는 볼 게 없어서 녹두빈대떡에 막걸리 몇 잔을 걸치고 쓸쓸히 빠져나와버렸다.

또 얼마 전에는 익산의 미륵사지를 찾을 기회가 있었다. 미륵사지는 그 규모로 봐서 동아시아 최대를 자랑하지만 그 또한 무슨 소용인가. 백제는 자신들이 멸망해가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미륵에 의지해 매달렸을 것이다. 미륵은 미래의 부처인데 이를 희망삼아 나라도 사람도 구제하려는 거대 소망을 담아서 궁전도 새로 단장하고 마지막 결전을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미륵사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주춧돌만 남게 된다. 마한의 전라도는 백제에 귀속되지 않고 상당히 저항하였던 역사적 기록이 나오지만 백제에 밀려났고 백제는 다시 통일신라에, 고려에 와서는 ‘훈요 10조’에 밀렸다. 그리고 근현대에 와서는 영남 세력에 밀렸다는 평가에 접해 있다.

그래서 다시금 몸을 일으킨 사건은 동학혁명이다. 동학은 경상도에서 발원했지만 그 꽃은 전라도에서 피웠다. 전라도 사람 반 이상이 동학에 가담했고 동학을 모르면 조선인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열기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동학은 서학에 대립된 것이니 진정 우리 것이라는 단정이 가능하다. 동학은 지배층의 착취와 농촌 경제 파탄과 자본주의 열강들의 침략에 대한 자동반감으로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때 ‘정감록’이 널리 유포되고 미륵신앙 등 반봉건적 민중사상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근원은 모두가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라 밝혔었다. 동학은 인본주의를 바탕에 깔고 인간평등과 사회개혁을 주장했기에 가는 곳마다 민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이 패배를 하고 전봉준 장군이 처형당한 전투가 우금치 전투이다. 말이 전투이지 농민학살이나 다름없었다. 2만 명에 이르는 대군이 신식 무기로 맞선 일본군에 의해 추풍낙엽의 신세를 면할 수 없었고 그 주검의 숫자가 산을 이루었다고 하니 그때의 참상을 헤아려 무엇하겠는가. 아무리 이념이 훌륭했어도 죽창 따위로는 신식무기를 당할 수가 없었으니 비교가 안 되는 전투를 두고 누구를 원망해야 할 것인가. 그때의 비참한 최후로 곰나루 계곡의 핏물이 6개월을 흘렀다고 한다.

다수의 전라도 민중이 이리 잔인하게 당한 것이고 광명의 역사, 미륵세상을 꿈꾸며 맞선 결전의 결과가 이리도 참혹했던 것이다. 동학 때 참여자는 전라도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그 뒤에 항일의병 참여자 중에도 전라도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전라도는 광주학생의거, 3·15와 4·19의 선봉에 있었고 5·18로 이어진다. 긴 역사를 볼 때 전라도는 당하고만 살아온 아픔의 세월이었다. 저항을 한다는 것은 목숨과 재산을 걸어야 할 사생결단의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기에 전라도는 항상 사람 사는 더 좋은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5·18은 미륵세상을 꿈꾸어온 동학의 착한 의미가 불퇴전의 궐기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동학을 한국의 ‘풍류’인 ‘바람의 물결’이란다면 5·18은 한국이 쌓아올린 자유민주의 신성한 보루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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