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된 오월어머니들 / 주홍
2023년 05월 18일(목) 18:41
주홍 치유예술가
“나는 학교 문턱에도 못갔어, 근디 뭔 그림을 그린당가?”

캔버스와 붓과 물감을 보자 두려움이 앞서서 오월어머니들 몇 분이 손사래를 치셨다. “우리 엄마도 학교 문턱에도 못 가셨어요. 평생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만 하셨죠.” 어머니들께 빨래하고 김치 담듯이 그림 그리시면 된다고 말씀드려도 흰 종이도 두렵고 뭘 그려야 될지도 모르겠다는 오월어머니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어머니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어렵지만 1980년 5월 광주에서 그 참혹한 장면을 목격하고 자식이나 남편, 그리고 그 이후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로 평생을 살아온 분들이다. 첫 수업은 가장 좋아하는 색을 배경으로 칠하고 보름달 같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동그라미에 눈, 코, 입을 그려서 ‘보름달 같은 내 얼굴’을 그렸다. 그림이 완성되자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쾌하고 재밌는 탈처럼 그려진 얼굴들을 보며 “언니 얼굴에 콧구멍이 없네.” “머리카락이 없다.” “이빨도 그렸네!” 하며 그림을 보며 수다가 시작됐다. “못 그려도 재밌네. 하하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평생을 움츠리며 사셨는지 자꾸만 오목가슴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다고 호소하셨다. 한 많고 주눅 든 시간이 몸에 켜켜이 쌓여서 통증이 되었다. “어머니들, 만세 세 번 할까요? 기지개처럼 팔을 위로 늘려서 만세를 해 보세요.” 어머니들은 만세도 어려워했다. “팔이 안 올라가네.” 만세 그림도 그렸다. 하늘과 땅을 그리고 사람이 만세를 하는 장면이다. 만세 장면에는 태극기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그려 넣은 분도 있고 나무나 집을 함께 그린 분도 있었다. 그림을 볼 때마다 만세를 하기로 약속했다. 어머니들은 그렇게 한 점 한 점 운동하듯이 그림을 그렸다. 손이 풀리기 시작한 그림은 밥상 그림부터다. 평생 밥상을 차렸으니 음식 재료는 눈감고도 그린다. 배추와 무, 파, 고등어, 갈치, 라면, 후라이….

재료부터 상차림까지 순조롭고 재밌게 그림이 그려졌다. 붓으로 그리는 걸 어려워하셔서 면봉으로 칠하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문지르기도 하고 물티슈에 물감을 묻혀서 걸레로 방 닦듯이 과감하게 색을 칠했다. 어머니들의 마음이 열리고 미술 시간이 즐거워졌다. 오월어머니들의 그림은 채도가 점점 높아지고 밝아졌다.

1년 동안 매주 수요일 오월어머니집에서 미술수업을 했고 어머니들의 그림이 모여 100점을 넘기자 전시회를 하기로 했다. 오월어머니집과 시민 자생공간 메이홀에서 협력해 전시가 결정됐다. 메이홀은 매년 오월이면 한 달간 오월 특별전이 열리는 곳이다. 그동안은 유명한 민중미술가를 초대했던 예술공간이다. 오월어머니들 그림이 메이홀 오월특별전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189점의 어머니들 그림은 모이자 힘이 넘쳤다. 오월어머니들의 그림으로 팜플렛도 만들고, 그림들을 메이홀 전시장 전관에 걸었다. 참여작가 목걸이에 어머니들의 이름을 새겨넣어 제작했다. 91세 한양님 작가, 88세 강해중 작가, 88세 임근단 작가, 87세 주암순 작가, 86세 안성례 작가, 85세 김순심 작가, 85세 김점례 작가, 84세 장상남 작가, 84세 박화순 작가, 83세 임금자 작가, 81세 김옥희 작가, 81세 박순금 작가, 81세 정귀순 작가, 80세 윤삼례 작가, 78세 이숙자 작가, 72세 이정덕 작가, 69세 김순자 작가, 68세 최은자 작가, 63세 장명희 작가, 61세 윤화숙 작가, 59세 김형미 작가….

화가가 된 어머니들 스물 한 분을 메이홀 전시장에 모셨다. 아파서 그 자리에 못 오신 분들도 많았다. 어머니들은 눈물을 훔치시며 감격하고 기뻐하셨다. “이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래도 부르셨다.

광주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주먹밥 음식도 장만하고 수육도 준비하고 묵은지도 썰고 함께 어머니들을 화가로 만드는 오픈식 상을 준비했다. 많은 분들이 자리를 빛내주셨고 어머니들은 인생 처음으로 주인공이 됐다고 감동하셨다. 작은 대동세상이 열렸다. 43년전 10일간의 항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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