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금당도에서 어촌의 파워를 다시 본다 / 이정록
2023년 05월 23일(화) 19:59
이정록 전남대 명예교수·전남경제연구원장
이달 초 완도 금당도를 다녀왔다. 지역경영전략연구소 김혜영 이사장이 주관하는 ‘금당 육동 봉동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주민교육 때문이었다.

김 이사장이 요청한 금당도행을 흔쾌히 수락한 이유는 섬사람들 경제 활동을 인터뷰하고 싶어서다. 사실 금당도를 가볼 기회가 많았다. 필자가 소대장 시절 만난 동료는 자기 동네를 꼭 와보라고 여러 번 권유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가보지 못했다. 이번에 주민교육을 빙자해 금당도에 처음 들어갔다.

금당도 신흥 토박이 오재원(66)씨는 필자의 오랜 지인이다. 군대 시절 소대장과 부하 병장으로 만난 사이였다. 그는 가난한 농부 집안의 6남매 중 장남이었다. 1981년 군 제대 후 농사도 겸하면서 미역과 김 양식에 뛰어들었다. 고향에서 동생들을 건사해야 하는 장남의 숙명이었다. 이후 금당도 상수도 업무를 맡은 공사 직원이 됐다. 금당도 주민들이 안전한 식수를 먹을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취직했지만 양식장을 계속 관리했다. 그 덕분에 막내 동생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다. 옆 동네 처녀와 결혼해 딸 넷을 뒀다. 딸 모두를 광주 인근 명문 사립고와 대학을 보냈다. 지금은 다들 취직했고 결혼도 했다. 광주에 빌라와 아파트를 소유한 알부자다.

금당도 봉동에서 만난 박동이(64)씨는 새우 양식업자다. 금당도 주민이 인정하는 부자 어부다. 부인이 꾸민 2층 로마네스크식 양옥집은 탄식이 저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선친도 양식업을 했지만 본인이 고향에 돌아와 양식업에 뛰어든 지는 20년 남짓 됐다. 양식장 면적은 약 9천평이다. 전국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규모다. 일 년에 새우를 두 번 출하해 매출은 10억대 이상이다. 양식한 새우는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으로 나간다. 귀어하려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지런하면 먹고 살 수 있고, 아이들 좋은 대학도 보낼 수 있다”고. 새우는 가을에 먹어야 제맛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금당도 봉동에 거주하는 박규진(55)씨는 건축업자다. 부인은 ‘금당도팬션’을 운영한다.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광주로 나왔다. 광주에서 나이트클럽 디제이를 하다가 공장 건물을 짓는 회사에 다녔다. 13년 전에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귀촌했다. 문어와 장어를 잡는 통발어선을 탔다. 일손이 부족하니 뱃일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주특기인 건축업에 뛰어들었다. 도로 보수부터 집수리까지 섬 전체 일감의 30% 정도를 담당한다. 억대 매출을 올린다. 귀촌한 것이 행복하단다.

금당도 육동에 사는 이광웅(61)씨는 귀촌인이다. 광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섬을 떠났다. 광주에서 부인을 만나 결혼했고, 서울에서 건축업을 해 돈도 많이 벌었다. 남대문시장에 상가도 장만했다. 그런데 부인이 암에 걸렸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귀촌을 결심했다. 재산을 정리해 9년 전 고향으로 내려왔다. 밭농사도 짓고, 문어잡이도 했다. 지금은 자칭 ‘백수’다. 육동 마을 이장직과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그렇게 됐다. 부인은 요양보호사 활동을 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두릅나무 특작단지를 만들어 마을주민 소득을 높이는 게 꿈이다.

금당도 울포에 사는 김수암(54)씨는 금당도횟집을 운영한다. 광주에서 고교 졸업 이후, 서울에서 일식집을 운영했다. 20여 년 식당을 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운영난을 겪다가 결국 폐업했다. 2020년 말 귀어해 문어잡이 배를 탔다. 그러다 작년 5월 지금의 횟집을 오픈했다. 식당 내부는 ‘다찌’가 있는 압구정동 스타일이다. 금당도 최고란 자부심이 강하다. 내놓은 자연산 도다리회는 일품이었다. 장사는 나쁘지 않다고 한다. 그래 귀촌을 후회하지 않는단다.

전국 농산어촌은 인구절벽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다. 60대 이장은 청년 이장에 속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래도 형편이 좀 나은 곳이 있다. 어촌 마을이다. 해남군 화산면 관동마을에서 고구마 농사와 김양식을 하는 조충현, 청년 어부 송상철이 김양식과 낙지잡이를 하는 신안 하의도면 옥도, 그리고 이번 달 방문했던 금당도 모습은 여느 농산촌 마을과는 확연히 달랐다. 돈이 보였고, 주민들에겐 활력이 넘쳤다. 다들 뭍에 아파트와 빌라를 갖고 있었다.

금당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금 생활에 만족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어촌에 와 부지런히 일하면 도시보다 돈도 많이 벌고 좋다”고. 완도 금당도에서 어촌의 파워를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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