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기록하는 사람 / 천세진
2023년 06월 11일(일) 18:45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항상 무슨 일인가 벌어진다. 사소하고 일상적이어서 영향이 담장을 넘지 않는 일도 있고, 역사적 사건이어서 담장을 넘어 먼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도 있다. 역사적인 일도 두 갈래가 있다. 챗GPT의 출현처럼 특정 국가에서 탄생했지만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있고,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여 해당 국가에만 영향을 미치는 일도 있다.

얼마 전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사)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를 맡으셨던 김서진 박사의 『평화주권의 길』이란 책이었다. 개성공단이 어떻게 탄생하고, 문을 닫게 되었는지를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개성공단은 정치적 산물이었지만, 책의 의미를 정치적으로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 기록이라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개성공단이 한국에만 의미 있었다거나, 그 의미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폄하가 개성공단의 탄생과 폐쇄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명분을 상하게 할 수는 없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의 의미를 기록자의 처지에서 생각해보았다. 역사가 흘러갈 때, 모두가 기록자로 나서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록자는 드물다. 기록하는 자는 역사적 사건에 개입되어 있는 복잡한 입장들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지만 그 일은 결코 순탄치도 편안하지도 않다.

역사적 사건마다 대척에 선 이들이 있고, 기록자가 아무리 객관적 태도를 취하려고 해도 기록물이 대척에 선 어느 한쪽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런 오해로 인해 기록자가 사명감을 갖고 수행하는 힘든 길을, 역사적 사건에서 취한 자신들의 태도가 깊이 읽히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 막아선다. 그것이 언제나 존재했던,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역사적 풍경이다.

불편한 것들을 제거한 기록을 ‘역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역사는 승자가 재편하는 기록”이라는 해석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모든 기록이 그에 해당한다면 역사적 기록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 다행히도 ‘역사’의 존재 이유를 묻고 기록하는 김서진 박사님 같은 이들이 있다. 그 기록자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개의 사람들이 마다하는 고난을 각오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기록하는 이는 언제나 간두에 선다. 간두가 백 척인지, 오십 척인지는 따질 일이 아니다. 서지 않으려 하는 이들은 한 척의 간두조차 피해간다.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는 『에라스무스 평전』에서 가톨릭과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촉발에 의해 탄생한 신교 간의 극력한 충돌이 가시화되고 있던 격랑의 시대에, 어느 한쪽을 지지해 주기를 요구받았으나 끝까지 한쪽을 지지하는 일을 피하려 애썼던 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1446-1536)가 남긴 사유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이렇게 쓰고 있다.

“인류 내부에서 폭력을 가져오는 커다란 모든 갈등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종족에 내재한 인류의 단순한 폭력 의지라기보다 그 폭력 의지를 추동하여 다른 인류 집단에 덤벼들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을 편드는 편협을 피하려했던 에라스무스의 사유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인 세대나 시대가 있었다면 인류의 역사에 평화로운 변화가 자주 찾아왔겠지만, 그런 운 좋은 변화는 드물었다. 변화를 촉발시킨 마르틴 루터조차 변화가 만든 살풍경을 우울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변화는 극단이 촉발할 수 있지만, 그 촉발을 평화로 연결하는 것은 극단에 선 사람들이 아니다. 김서진 박사의 『평화주권의 길』이 어느 진영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로 읽히지 않고, ‘평화를 위한 기록’이란 기록자의 호소로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빌리 브란트(1913-1992)는 “동독과 수교를 맺은 국가와는 상대하지 않는다”는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방정책과 더 파격적인 대對동독 정책을 통해 통일의 기초를 다졌다. 빌리 브란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다.

“평화”는 가벼운 구호가 아니다. 격랑의 충돌과 드러나지 않는 암중모색이 지루하고 고통스럽게 이어진 후에야 얻어지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냉철한 눈으로 지켜보는 기록자가 있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가 그런 눈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평화가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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