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난데없이 / 한분옥

2023년 06월 18일(일) 19:47

한분옥

풀숲에 두 마리 곤충 뿔 세워 싸우는데
산이 무너졌나 나무가 자빠졌나
쇠똥에 미끄러지듯 그 자리엔 빈 하늘

장마 한 달 남짓 흑싸리도 껍질 한 장
병든 듯 술 취한 듯 움츠린 자라목에
벌레를 씹기라도 했나 뱉어내는 세 치 혀
(시집 ‘山菊 매운 향’, DK출판사, 2023.)

[시의 눈]

사위가 고요한 그때 ‘난데없이’ 총성인가 했네요. 아따, 욕발이 탄알처럼 뱉어지네요. 그자 ‘세 치 혀’ 총구로부터의 욕실탄은 내 가슴에 다발로 꽂힙니다. 곤충들이 ‘뿔 세워 싸우는’ 것처럼 인간사 다툼은 참 많지요. 사건 사고가 늘 이어져요. 하지만 우린 곧 잊고 허허로운 하늘과 마주합니다. 금년도 절반 유월이 가는군요. 보리누름께에도 재끼꾼들은 낡은 방에서 손톱 위를 쪼이네요. 비록 ‘흙싸리 껍질’이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광빨인 양 지그시 눌러 재는 맛은 따로 있지요. ‘움츠린 자라목’은 웬 장땡이라도 그려낼 듯 잔뜩 구부려집니다. 한데, 저 사람 봐요. 무슨 ‘벌레’라도 씹었을까요. 난데없이 ‘엠뱅!’ 지랄 욕총을 또 쏟습니다. 허어, ‘세 치 혀’만으로 실어낼 수 없단 듯 거기 구시렁을 제 추임새로 보태네요. 구경하는 에먼 나한테까지 욕바가지를 둘러씌웁니다. 참, 요즘엔 ‘난데없이’ 화를 내며 ‘묻지마’를 휘두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개평은 관두고 도망합니다. 벼락이 따로 없어요. 사람이 벼락이라니까요.

한분옥 시인은 경남 김해에서 나 2004년 ‘시조문학’ 천료,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꽃의 약속’(2015), ‘꽃 다 진다 잎 진다’(2020)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사랑과 가족, 자연에 수 놓인 원색미를 추출해 절절한 서정을 직조해내는 시인입니다. <노창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