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자의 '작은 학교이야기']생태텃밭의 경험이 행복사회의 동력 될 터

2023년 06월 22일(목) 21:15

고흥점암중앙중학교장

푸른 색이 요동친다. 생태 텃밭을 가꾼 지 벌써 4개월,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열심히 가꿨다. 과연 자라날까 싶었지만 어느 사이 쑥쑥 크더니 무성해졌다. 필자가 심은 감자는 꽃이 피고 지더니 어느 결에 다 자랐다. 급기야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잎과 줄기가 땅에 눕혀졌다. 사람이건 식물이건 농사는 ‘기다림’인가 보다. 금세 캐고 싶었으나 토실토실해 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며칠 전, 작은 학교 살리기 공청회에 참석했다. 공청회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 지역 소멸의 위기 앞에서 지역 학교를 살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송형곤 전남도의원 발의로 추진됐다. 작은 학교의 학교별 특색교육과정을 지원하고 2학기에는 교과별 인근학교 간 공동수업을 추진하겠다는 게 고흥교육지원청의 계획이다. 공동수업은 생각을 나누고 협업을 통한 사회성을 길러내기 위해선 적정 수의 학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학교의 문제는 인구급감 시대의 문제이기에 아이 키우기의 패러다임의 전환 측면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지자체 발전 방안을 연구하는 학계 측은 주장한다. 특히 인구소멸지역에서는 특별법으로 이를 보장해 줘야 한다고 덧붙인다. 필자 또한 본 칼럼을 통해 양육과 교육을 책임지는 국가시스템을 제안한 적이 있어 매우 반가웠다. 인구 유입의 성공 사례로 상주군의 마을협동조합 대표의 발제가 인상적이었다. 상주군의 모 중학교가 대안학교로 전환하면서 타 지역 주민이 이주했단다. 이주가족들이 마을교육공동체를 이뤄 지금은 협동조합으로 경제공동체가 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학부모 뿐 아니라 청년층 이주민이 지속적 증가추세를 보인다는 사례발표였다. 학교와 마을이 공동체를 이뤄 마을과 학교를 살려낸 것이다.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 문제는 저출산과 도시·농산어촌의 인구 비대칭이 원인이다. 따라서 작은 학교를 살리기는 학교만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지자체·마을(면)공동체·학교가 공동의 노력을 하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국가는 보육과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자체는 단기적 인구 유입책에서 벗어나 마을의 가치에 반해 향촌한 젊은이가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주어야 한다. 주거·일자리·의료·교육·문화 등을 향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또 마을(면)은 학교를 포함한 지역공동체와 마을(면)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른 비전을 수립하고 마을의 특성을 담아낸 교육과 경제 공동체를 꾸려야 한다.

한참 열기가 달아오른 공청회장을 뒤로 하고 학부모독서모임이 열리고 있는 우리 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어느 젊은 부부가 “부모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고 털어놓는다. 우리 모두 격한 웃음으로 동감을 표했다. 농번기철이라 많이 참석하지 못 했지만 공통 관심사인 ‘어떻게 하면 자녀와, 가족, 그리고 주변세계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놓고 오랫동안 갑론을박했다.

그러던 중 밭에 심었던 농작물을 수확하여 청가시나무 아래서 잔치를 한다는 기별이 왔다. 이른바 ‘삼겹살 데이’란다.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생명의 소중함, 공동체 정신을 배웠을 것이다. 상추며 쑥갓 오이 등이 수북하다.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쌈을 싸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모두가 생산자로서 또 소비자로서 4개월간 소중한 체험활동의 터널을 통과했던 것이다.

우리는 노동과 생산, 소비가 분리된, 거대 자본 중심 사회에서 살고 있다. 교육현장에서도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오늘 우리 아이들이 텃밭에서 했던 것처럼 놀이가 공부가 되고 그것이 삶이 되는 사회를 희망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이 되고 그 노동으로 온전히 자아가 충만되는 삶, 그게 행복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공청회에서 내내 학부모들이 고민했던 문제가 바로 그게 아니고 무엇일까. 빨리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생태텃밭의 경험은 우리의 당면 고민을 풀어줄 해법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