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만들기 되돌아보기 / 이용연

2023년 06월 25일(일) 19:51

이용연 마을자치연구소 대표·광주마을학교 교장

마을은 모듬살이의 터전으로, 우리의 생활과 태도,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공자도 ‘어진 마을이 착한 사람을 만든다’며 택리(擇里), 마을을 잘 선택할 것을 권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직장과 부동산 가격에 따라 옮겨 다니는 현실에서 마을은 고향의 추억 속에 있을 뿐이다. 간섭 없는 사생활과 편리한 아파트를 즐기던 ‘나 홀로 사회’가 이제는 탐욕과 이기심, 고독에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다시 마을을 되돌아보고, 마을공동체를 되살려 보자는 마을만들기가 지난 20여 년 동안 지역혁신운동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그 중심에 광주가 있어 왔다. 정권의 지지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새마을운동, 강제 철거 반대로 주거권을 지키기 위한 도시빈민 운동은 1987 이후 모듬살이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마을만들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광주 YMCA의 좋은동네만들기, 광주시 북구의 아름다운 마을만들기는 그 전형으로 시민사회, 주민운동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특히 1995년 민선자치의 부활과 함께 마을만들기는 전국 지자체로 확산 되면서, 주민 스스로 마을을 만들어가는 주민자치의 핵심 활동으로 주민이 이웃끼리 손잡고 마을과 골목에서 마을자치를 실천하는 풀뿌리민주주의 현장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마을만들기 운동이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작년 12월 서울시가 마을만들기 조례를 폐지하고, 서울시와 자치구의 마을 중간지원 조직을 폐쇄한 것에서 시작하여, 전국에서 마을공동체 운동을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지자체가 크게 늘고 있다. 이는 지난 20년 어렵게 성장하여 정착기에 들어선 마을만들기에 찬물을 끼얹는 퇴행적 일이다. 서울시가 마을만들기를 폐지하면서 든 이유는 마을만들기가 주민이 아닌 시민단체 출신 마을활동가 중심이며, 중간지원 조직이 정부 보조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주민참여는 미약하다는 것이다.

물론 마을만들기가 급속히 확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인 시행착오나 마을공동체 방향을 잘못 실천하고 성과가 미흡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를 들어 마을만들기를 폐지하고, 마을활동가와 주민들을 거칠게 폄훼해서는 안된다. 근본적 이유는 ‘2할의 분권 1할의 자치’라고 말할 정도의 작은 권한과 기울어진 구조에 있다. 마을현장의 관치 관행과 정부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마을재정도 문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쏟아지는 마을만들기 공모사업과 이를 소화하기에 벅찬 마을의 역량과 자원도 여전하다. 주민들의 낮은 관심과 참여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런 것들은 주민과 마을활동가들이 마을 현장에서 늘 고민하는 묵은 과제로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는 없다. 마을문제를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 스스로 풀어가는 과정이 곧 마을만들기다. 도전에 선 마을만들기를 지키고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마을만들기 주체와 수행 방식, 추진 절차를 다시 되돌아보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마을 현장에서, 주민 손으로, 마을 스스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너무나 당연한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특히 보조금 따기에 급급해 사업으로 변질된 지원 방식, 마을계획, 마을의제, 마을총회, 주민참여예산이 따로따로여서 주민의사가 직접 반영되지 않고 변질되는 운영체계, 마을의 다양한 주민단체간 협력과 연대 부족도 바로잡아가야 한다. 마을중간조직도 행정의 입김과 정치적 계산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영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마을만들기는 정부의 시혜적 보조와 지원이 아니라, 주민들의 단단한 마을공동체 의식과 친밀한 이웃관계에서 시작하고 성장한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