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윤을 추억하며 / 임종영 |
| 2023년 07월 05일(수)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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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1986년 7월5일 한국 민중미술 대표 작가 오윤(1946-1986)은 간경화로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1980년대 이후 괄목할만한 예술적 성과로 인해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민중들의 일상적인 삶과 신명을 표현한 목판화는 그가 이룬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는 작가가 1970년대 후반에 제작한 ‘지리산1’, ‘설움’, ‘엄마와 아들’을 비롯해 생을 마감하기 1년 전인 1985년 작 ‘칼 노래’, ‘징’ 등 15점이 전시되고 있다.
서울대에서 조각을 전공했던 오윤은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에 재학 중이었던 친 누나 오숙희와, 누나 지인인 서울대 미학과 김지하로부터 영향을 받아 예술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오윤 작품의 예술적 자양분은 탈춤, 판소리, 마당굿 등 전통 연희에서 찾을 수 있다.
1970년 대학졸업 후 오윤은 거의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테라코타 소품 및 테라코타 벽화 제작 외에 특별한 가시적 예술적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다만 1970년대 중반 목판화에 대한 창작자들과 일반 대중의 관심이 크지 않았을 때 그가 판화 작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 할 만하다. 오윤의 판화에 대한 관심은 멕시코 상류층과 부유층을 해골을 등장시켜 풍자했던 멕시코 판화가 포사다의 영향과 1930년대 중국 신흥 목판화 운동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그는 강한 흑백 대비, 형태의 단순성, 그리고 복제성에 의한 대중들과의 소통이 용이한 점 때문에 목판화에 깊게 매료됐다.
1980년대 접어들어 오윤은 건강 문제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고, 진도로 요양을 가기도 하지만 수많은 판화 작업들을 쏟아냈다. 특히 판화 작품에는 수천 장에 이르는 드로잉 작업을 통해 민중의 전형화 된 모습을 창출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잘 드러나 있다. 오윤은 굵고 간결한 선묘를 바탕으로 건강하고 강인한 인물상을 제시했으며, 인물의 동작 하나 하나가 지니는 상징성까지도 형상화하려 노력했다. 오윤의 판화는 1980년대 일종의 투쟁적 선전매체로 활용됐던 일반적인 민중 판화작품과는 달리 민중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신명이 건강하게 잘 표현돼 있다. 오윤은 민중들의 한과 신명이 배어있는 전통 춤과 소리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춤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춤의 흥은 사람들은 물론 호랑이와 도깨비까지도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오윤은 생전 그의 판화작품에 에디션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소수 특권층만이 작품을 소유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이 예술적으로 평가 받기보다는 작품의 내용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오윤은 1980년대 민중미술의 시작과 함께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의 판화 작품을 기억하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생애, 그리고 작업에 전념했던 기간이 고작 5년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오윤만큼 우리 미술사에서 위대하게 평가받는 작가는 없다. “그는 바람처럼 갔으니까 언제고 바람처럼 다시 올 것이다.” 라는 그의 묘비명의 글귀처럼 그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민중들의 삶과 신명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들의 마음 속 깊이 이미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