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면서 하는 주민자치 회의, 안될까? / 서순복

2023년 07월 16일(일) 19:17

서순복 품자주자시민들 대표회장 / 조선대 법학과 교수

현대 음료의 90% 넘게 커피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커피는 각성과 긴장의 효과가 있어, 잠을 쫓고 업무효율성을 높이는 도움을 준다. 그런데 우리 민족에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의 음료로 차가 있다. 오래전부터 차는 생활필수품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개문칠건사(開門七件事)라 하여,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부딪치는 일곱 가지 일, 사람이 살면서 매일 겪게 되는 일곱 가지 문제를 말하는바, 쌀과 장작과 기름과 장과 초와 소금 그리고 차(茶)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차는 독을 푸는 해독제로 등장했다. 요새 말로 하면 디톡스 기능을 하는 수단으로 차가 등장한 것이다. 일상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우리네 선인들은 차를 밥 먹듯이 일상 생활화하였다. 감기에 걸리면 찻잎을 따서 주전자에 우려 마시기도 했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는다. 주민자치회라는 지역공동체의 공동의사결정 과정에서 특정 사안을 놓고 때로는 긴장과 대립의 갈등을 겪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차를 마시면서 마을 회의를 진행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서 대립의 강도는 훨씬 약화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을 갖는다. 물론 입증된 결론은 아니지만 말이다. 조선 시대에 다시(茶時)라는 회의 방식이 있었다. 광산구 너브실 마을에 고봉 기대승 선생을 기리는 월봉서원 앞에 있는 찻집 이름도 ‘다시’! 곧 이를 원용하고 있었다. 법을 집행하는 사헌부의 관료들이 차를 마시는 의례를 행한 후에 죄인의 죄를 논하고 기강을 바로 잡았다 한다. 차를 마시는 생활은 바른 정신을 일깨우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매일 아침에 사헌부의 대간들이 대청에 모여 차를 마시며 회의를 열고 관원의 비행 등을 감시하도록 감찰을 나눠 파견했는데, 이를 다시(茶時)라고 했다. 혼자서 차를 마시는 행위는 신선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獨 曰神)고 다신전에 나온다. 둘이서 차를 마시면 빼어나다고 했다(二客曰勝). 서넛이서 차를 마시면 아취가 풍긴다고 했다(三四曰趣). 차를 마시면서 회의를 한다면 차분하게 안정된 가운데 회의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차담 내지 다담이라고 한다. 차를 마시면서 회의를 하면, 향기로운 이야기 꽃이 피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특히 아랫 배를 따뜻하게 해주는 발효차를 마시면서 하면 몸에도 좋고, 더 활기차게 회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냥 맹숭맹숭하게 회의를 하는 것보다 차를 마시면 훨씬 회의 분위기가 좋아질 것으로 추측해본다.

현대 사회는 환경오염으로 악화돼가고 있다. 대기오염뿐만 아니라, 토양오염과 농약으로 인해 식탁에 오르는 식자재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필자가 최근 암 수술을 하고 보니 더욱 건강에 관심이 더 간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건강한 도시가 돼야 한다. 고령친화도시, 여성친화도시, 인문도시 모두 다 좋다. 거기에 특히 건강도시를 지향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주민자치회 역시 건강하고 행복한 자치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개인 차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리라.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 듯이, 건강한 마을이 건강한 도시와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마을마다 독서모임이 만들어지고 책을 읽고 마을문제를 궁리해서 서로 해결해나가는 학습공동체를 상상해본다. 회의 역시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어리석음은 극복돼야 한다. 차를 마시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견해를 정중하게 제시한다면, 회의의 생산성과 건강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차 마시는 일을 생활화하고, 회의 시에도 차를 마시면서 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