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문장부호 시로 읽기·14 - 가운뎃점(·) / 문무학

2023년 07월 23일(일) 19:48

문무학

닿소리도 아니고 홀소리도 또 아닌
작은 점 하나로 문장 속에 버텨 서서
앞뒷말 높고 낮음을 평평하게 고르는

왼쪽도 오른쪽도 앞도 뒤도 없애고
작아도 한가운데 또렷하게 떠올라서
작아서 맵다는 고추 그 맛을 보여주는
(시집 ‘뜻밖의 낱말’, 뜻밖에, 2023.)

[시의 눈]

글을 타자하며 Ctrl-F10으로 돌아가 ‘가운뎃점’을 찍을까 저어할 때가 있습니다. 갈등과 고민, 나와 너 사이도 그렇더군요. 어느 기분 좋은 날 밤, 남편과 아내가 잠자리에 듭니다. 그런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잠들었습니다. 부부는 아이를 가만 들어서 한쪽에 누이고 합환 세상에 도달합니다. 이후 아이를 다시 가운데 눕힙니다. 둘은 세상에 가장 평화로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봅니다. 말과 말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높고 낮음을 평평하게 고르는’ 순간이지요. 잠깐, 어느 문학기행 때였네요. 두 노인이 함께 앉아 사이가 좀 좋은가 싶더니, 얼마 쯤 가다 A가 돌연 “기사님 에어컨 꺼 주세요” 하자, B가 “기사님 더 세게 틀어 주세요” 하며 오기를 박았습니다. 알고보니 한 분은 알레르기 환자에 한 분은 소주를 걸친 듯 불쾌한 얼굴이었습니다. 종내, 둘은 큰 싸움을 벌였구만요. 차에 내리자 한 젊은 시인이 끼어 가운뎃점 악수를 권했더랬습니다. 허, 둘을 말리랴. 화해시키랴. 막걸리와 안주값이 좀 들었지요. 그 홍탁의 삼합에 가운뎃점으로 낀 묵은지는 이 젊은이와 막걸리를 오래오래 기억한답니다. 문무학 시인은 경북 고령에서 나, 1982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 ‘눈물은 일어선다’(1993), ‘낱말’(2009)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낱말과 부호에 담긴 담론을 인유해 내며 풍속화 같은 터치로 소통하는, 못 말릴 말·붓의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