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고향 만들기 / 수필 - 김경순 |
| 2023년 07월 24일(월)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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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삼십 대 때의 직장 동료다. 다른 직장으로 옮겨서도 잊을만하면 소식을 주는 다정다감해서 좋은 친구다.
그녀는 산 밑에 삼백 평의 밭을 사서 복숭아, 감, 자두, 앵두, 대추. 석류, 매화나무 등의 유실수를 심었는데 제구실을 한 것은 매실 뿐이다. 칡, 억새, 쑥, 망초 등의 잡초가 키를 넘는 곳도 있다. 경작할 여건이 아니라 풀만 베어 주고 말아서인지 다른 과일은 열리자마자 떨어지거나 거지 주머니다.
매실을 딸 때가 되면 그녀는 가까운 이들을 불러 수확의 재미를 안겨준다. 매실을 따는 기쁨은 팔이 아픈 것도 잊게 한다. 높은 가지에 달린 매실은 낭창한 가지를 휘어잡는다. 묵직한 무게가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가지엔 매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나는 손에 전해지는 그 느낌이 좋다. 일 년에 두어 번은 가서 매실도 따고, 머위와 쑥을 캐며 정담을 나누었던 밭이 내가 그리던 모습으로 변해 있다.
친구는 퇴직한 뒤에 그 밭에 쉼터를 지었다. 지붕 위로는 수세미와 조롱박을 올리고 그 앞엔 꽃밭을 조성했다. 마을에서 전기를 끌어오고 지하수를 설치한 뒤 비닐하우스도 만들었다. 하우스 양옆은 개폐기를 사용해서 창문처럼 바람과 빛을 끌어들이기 위해 여닫을 수 있게 하고, 앞뒤에 문을 둔 하우스 안 절반은 거실처럼 사용한다. 반대쪽엔 계절에 따라 심어야 할 모종이 자라고 그 옆 공간엔 수확한 마늘이나 양파, 콩 등이 햇살에 몸을 말린다.
밭엔 계절에 따라 고구마, 땅콩, 완두콩, 강낭콩, 들깨, 오이, 미나리, 가지, 토마토 등이 잡초를 밀어내고 자리를 잡아갔다. 하우스 뒷문 옆 닭장에서는 삼십여 마리의 닭이 모이를 쪼거나 졸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그 옆 토끼장에는 한 쌍의 토끼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와삭와삭 풀을 먹는다. 암놈은 흔히 볼 수 있는 흰털에 분홍 눈, 수컷은 눈 둘레와 귀 가장자리에 까만 태가 그린 듯이 곱다. 그 모양은 눈 화장을 예쁘게 한 아가씨의 눈을 닮았다. 사람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동물도 성형을 하나 싶은 착각을 할 정도다.
나는 한 달에 두어 번은 초대를 받아서 그곳에 간다. 오늘도 들깻잎이 잘 자랐으니 놀면서 잎이나 따자는 부름에 만사 제쳐 놓고 달려왔다. 친구는 화덕에 걸어놓은 양은솥에 장작불로 닭죽을 쑨다. 나는 평상에 앉아 베어다 준 들깻잎을 따다가 심심하면 주변에 있는 봉숭아, 채송화, 꽃기린, 관상용 소나무, 고무나무를 본다. 그것들로 인해 금세 마음이 싱그러워진다.
친구는 오이, 고추, 깻잎 등을 따다가 즉석요리를 한다. 찬 만드는데 서툰 나에게 양념장 만드는 법, 어린 깻잎 지지기. 깻잎장아찌, 오이냉채 만드는 시범을 보인다.
점심을 먹은 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그도 시들해지면 그녀의 기타 반주에 맞춰 ‘봄날은 간다.’나 ‘타향살이’ 등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친구는 직접 만든 반찬, 호박, 가지, 고추, 미나리, 깻잎에 닭까지 한 짐을 꾸려 차로 집에까지 실어다 주고 간다. 그런 친구가 친정에 가면 이것저것 한 보따리 챙겨서 버스 타는 곳까지 이어다 주고 가시던 어머니 생각을 불러와 코끝이 찡하다.
고향 친구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고향이, 떠나고 없는 이들이, 그 시절이 그리워서였다. 나는 그 농장에서 유년의 친구들처럼 마음이 순수하고, 어머니처럼 이것저것 챙겨주어도 미안하거나 부담이 가지 않는 친구와 더불어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외에 무얼 더 바라겠는가.
<김경순 약력>
▲‘한국수필’ 수필, ‘문학예술’ 시 등단
▲‘문학세계’ 수필 본상
▲한국문인협회 대외협력위원회 위원
▲국제펜클럽 회원, 광주여류수필 주간
▲광주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작가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