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능청·해학…남도 서정시를 만나다 최승권 시집 ‘눈은 어머니를…’ 출간 최명진 기자

2023년 07월 30일(일) 19:38

해학이 사라진 시대 남도 서정시의 특장이 돋보이는 시집이 발간됐다.

최승권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지상에 내려왔을까?’(문학들刊)다.

시인의 첫 시집 ‘정어리의 신탁’이 문명 비판과 비상식적인 현실에 대한 대응력을 위해 낯선 실험을 감행한 것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그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남도 서정시의 특장을 보여준다.

“쑥 톳 미역 우럭 장애 간재미 하네들이//몸뻬 다리를 꼬고 바다를 보며 한나절 나란히 앉아 머리를 푸르게 말고 있다.//여긔 오문 시상 엄니들 야그 다 돌돌 말려서 빠마된당께라우//고구마 한 솥 나눠 먹은 노을 속 검은 날개 새 떼들은//흐린 유리창 밖 구불구불한 파도를 이고 주름진 고샅길을 잘도 넘어간다.” - ‘조도미장원’ 전문

‘하네’는 할머니를 가리키는 전라도 입말이다. 이 시는 전남 진도에 속한 섬, 조도의 미장원 풍경을 그린 것이다. 시인은 조도 아짐(아줌마)들의 한나절 삶을 바다와 바다 것들, 쑥이며 톳 미역 등과 한 몸으로 엮었다.

입말이 두드러지는 구절을 굳이 표준어로 바꾸어 보자면 ‘여기 오면 세상 어머니들 이야기 다 돌돌 말려서 파마된다니까’라는 뜻이 된다. 전라도 입말의 박자며 높낮이, 예컨대 ‘라우’는 가락과 정감을 아는 독자라면 이 시가 왜 전라도 입말로밖에 표현될 수 없었는지 수긍이 간다.

‘노을 속 새 떼들도 고구마 한 솥을 나눠 먹고 구불구불한 파도를 이고 주름진 고샅길을 잘도 넘어가는’ 풍경에는 삶의 희로애락을 전라도 산등성과 논밭처럼 자연스레 넘어가려는 시인의 긍정의 시선이 배어 있다.

늘어지다 다그치고 맺다가 푸는 가락과 청중을 웃고 울리는 능청과 해학은 지극히 전라도적인 것이다. 무등산 위로 아침이 오는 풍경을 마치 카메라의 롱테이크처럼 묘사한 시 ‘낳다와 열리다’는 한 편의 서사시 같은 광경을 선사한다.

시집 2·3부에 수록된 작품들은 양림동에서 태어난 시인이 그곳을 기반으로 한 가족사를 담은 것이다.

곽재구 시인은 “지상에 내리는 눈이 어머니를 꿈꾸며 내려왔다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최고의 헌사다”며 “어머니의 사랑은 그지없고 지상을 하얗게 뒤덮는 눈발의 순결한 평화 또한 그지없다. 둘의 이미지가 겹치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 우리는 한 편의 시가, 하나의 이미지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생각하게 된다”고 평했다./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