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능소화 통신 - 어머니·6 / 최승권

2023년 07월 30일(일) 19:58

어머니는
흙바람 이는 돌담벼락 모퉁이길에서
하냥 기다리는 이유도 밝히지 않고
자식들 돌아올 허기의 초저녁을 위해
담홍빛 손전등 여럿을 벙글어 매달아 놓으셨지요
악아, 살다 보니 시상에 골목이 이렇게 환한 날도 있다야

어머니,
식구들이 돌아와서 아랫목에서 놋주발 밥그릇을 찾고 있을 때
십 촉 바깥꽃등을 노을 누운 저녁바다처럼 끄셨지요
오메, 엄니 그때 맴이 어찌했으까요?
누추하지만 은근하게 서 있던 어스름 정제문 앞에서
(시집 ‘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지상에 내려왔을까?’, 문학들, 2023.)

[시의 눈]

식구들을 마중하는 돌담벼락 길입니다. 거기 기대어 선 어머니는 어스름에 잘 띄질 않습니다. 먼지 부연 무명수건을 쓰고 있군요. 흰 저고리에 ‘조다리물’ 들인 낡은 치마입니다. 하루를 마친 굶주린 배를 움키고 오는 길에 ‘담홍빛 손전등’이라도 되는 양 어머니는 능소화 쪽에 손을 흔드십니다. 그래, 환한 꽃으로도 보이는군요. 이제, 우린 두레상 ‘놋주발 밥그릇’과 마주합니다. ‘정제문 앞’에 웃음을 단 어머니는 ‘배고프지, 어여 먹어라’ 변함없이 다가오시지요. 그래 어둠의 뚜껑을 엽니다. 잘 퍼진 보리밥에 우리 입도 활짝 능소화가 됩니다. 최승권 시인은 광주에서 나, 198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 ‘정어리의 신탁’(2016)을 펴냈습니다. 그는 기억의 꽃을 통하여 사랑과 그리움을 감각적으로 인유해 내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