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차마고도 옛길을 걷다 / 최도선

2023년 08월 06일(일) 19:31

최도선

산이 모여 사는 이곳 하늘도 현기증 나
원시의 적막을 깨며 구름을 딛고 간다
조랑말 방울 소리는 빙벽 허릴 두드리고

가파른 설산에서 말들이 멈출 때는
죽음을 견디느라 힘을 다해 똥을 싼다
또 그건 뒤에 오는 말에게 전하는 주의 경보

다(茶)와 말을 끌던 마방의 흰 등줄기
아직도 진사강은 단장(斷腸)에 뒤틀리고
고행은 주리를 튼다, 석양빛 던져 주며
(시집 ‘물까치 둥지’, 현대시학, 2023.)

[시의 눈]

허, 숨이 턱턱 막히네요. 낡은 선풍기 하나로 후텁지근한 바람을 쐬며 채널 TV를 틉니다. ‘하늘도 현기증’을 앓는 ‘차마고도’의 길이지요. ‘조랑말 방울’ 울리는 화면엔 겨울이지만, 이 여름 무덥고 지난하게도 들립니다. 좀 전 37도에 육박하는데 앞산을 다녀왔네요. ‘그러다 일통 난다’는 한 아저씨 말에 이열치열 걷기를 그만둡니다. 온열증센듯 ‘고행’ 같이 ‘주리’를 트나 봐요. 열대야에 땀이 많아 벌써 등조차 흥건합니다. 차마고도 사람들은 ‘차와 소금’에 희망이라도 있네요. 하지만 안타까운 우리네 수해민의 천막살이엔 없어진 집과 논밭만 번히 박힐 뿐입니다. 잃은 ‘집’을 찾아 아, ‘차마고도’를 가야 합니다. 최도선 시인은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1993년 ‘현대시학’ 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로 활동했습니다. 시집 ‘겨울 기억’(1994), ‘서른아홉 나연 씨’(2015) 등이 있습니다. 그는 소박한 삶을 정제와 응축의 미학으로 표현하는 전통주의적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