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든 사회의 경고 본사 부회장 |
| 2023년 08월 09일(수) 18:50 |
|
좀 충격적이다. 치안경찰이 촘촘히 대책을 세운다해도 무작위로 발생하는 범죄를 사전에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불안하다.
여기저기서 이 현상을 분석하고 원인을 파악한후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신림동 사건 용의자는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분노형 범죄였다. 서현역 사건의 용의자는 피해망상을 보였고, ‘분열적 성격 장애’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고 유형도 복잡한 무차별 범죄라는 점이다. 무차별 범죄는 정신질환과 관련한 문제로 분류하면서 근본적인 예방시스템 등 근원적 대책은 도외시됐다.
문제는 서울 신림동 사건 이후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살인 예고’ 글이 전국에서 잇따르면서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공공장소의 묻지마 흉기 범죄는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테러다. 묻지마 범죄는 말 그대로 누가, 언제, 어디서 피해를 입을지 몰라 더 불안을 증폭시킨다. 이런 범죄는 개인 차원에서 예방하고, 대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묻지마 난동’ 사건의 공통점은 피의자 모두 사회로부터 고립된 외톨이라는 점이다. 서현역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지만, 특목고 진학에 실패하고 방황을 거듭하다 가족과 떨어진 채 홀로 지냈다. 계속된 좌절 속에 열패감만 키우며 사회적 고립이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신림역 살인사건의 피의자도 “열심히 살아도 안 되더라, ×같아서 죽였다”며 사회를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경찰 조사에선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사회 밑바닥에 자리한 분노가 얼마나 위험 수위인지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외톨이는 실패의 경험 속에 좌절감이 누적되고, 건전한 사회적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불만을 키우며, 분노 게이지가 임계점에 달하는 순간 폭발하게 된다. 우리나라 20대 불안장애 환자는 2017~2021년 5만9080명에서 11만351명으로 86.8% 늘었다. 지난 3월 국무조정실 조사에선 만 19~34세 청년 중 ‘은둔형 외톨이’가 24만 명이나 됐다. 위태로운 청년들의 고립과 불안이 언제 분노로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고단한 청년들의 현실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구직활동 없이 그냥 쉰 청년(15~29세)은 39만 명으로 5년 전(29만9000명)보다 30% 늘었다. 지난 2분기 20대 이하의 은행 연체율(0.44%)도 역대 최고다. 50대(0.2%)와 60대 이상(0.21%)의 배가 넘는다. 돈이 없어 빚에 의존하고, 제때 갚지 못해 빈곤이 악순환하는 상황이다.
묻지마 범죄를 막으려면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한 이들의 자포자기가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하고, 사회적 기회구조를 더욱 넓혀줘야 한다. 본질적으로 사회구조와 의식을 바꿔가지 않고선 막을 수 없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일본이 이미 지난 2000년대에 겪은 현상과 닮았다. 나만 잘 되지 않는다는 왜곡된 생각이 다중을 향한 분노로 이어지고, 급기야 내가 갖지 않은 행복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한다.
사회병리현상으로 보고 사회적 원인을 짚고 이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한다. 임기응변적 대처보다 이 상황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정부조직체계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협력기구도 모색해 봐야 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묻지마범죄의 주요 원인은 불평등과 양극화, 해체되고 있는 공동체 사회다. 잘알다시피 불평등과 양극화는 상대적 박탈감과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삶의 위기와 불행을 가져온다.
인권도시 광주만이라도 시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지방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해야 한다. 소외 청소년을 돌보는 일부터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까지 광주다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절망의 고달픈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묻지마 범죄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묻지마 범죄를 심각한 사회 병리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