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입추 / 김형식

2023년 08월 13일(일) 19:37

김형식

산모가 몸을 풀고 있다

비릿한 산 그늘
여름을 털어내며
마을로 걸어 내려오고 있다

불볕 속에서 들려오는 갓난아이들의 숨소리
저마다 높은 하늘 한 자락씩 품고 있어 반갑다

잠에서 깨어난 가을 속살들이 엄마 젖을 찾아 물고
옹알이한다

가을빛 들고 있다
(시집 ‘질문’, 지혜, 2023.)

[시의 눈]

‘이 또한 지나가리라’. 불볕더위, 제깟 것 기승을 떨어 봤자입니다. 37도를 오르내리는 한증막에도 이런 솔로몬 수사로 위안을 삼았더랬지요. 참, 이 여름은 잔인함으로 위대했네요. 이제 ‘비릿한 산 그늘’이 깻다발 털 듯 여름을 털어내려 합니다. ‘아, 조금만 더 있을께’ 여름은 모기 침으로 둔갑해 땀에 짓무른 내 어깨를 콕 접종하듯 찌릅니다. ‘저리 가란 말이야!’. 철썩, 부채가 날립니다. ‘쉿, 갓난아이의 숨소리 잖아!’ 이 말에 순간 여름도 주춤하는군요. 아이가 숨을 쉬듯 바람이 엄마 가슴을 엽니다. 젖을 문 아이는 ‘갈갈 가을’하고 ‘옹알이’를 합니다. 이 가을엔 뭐 대단한 일이나 할 것처럼 나도 흥분합니다. 김형식 시인은 전남 고흥에서 나 불가에 입문해 20년간 칩거했습니다. 2015년 ‘불교문학’에 시로 등단했고, 시집 ‘그림자 하늘을 품다’(2015), ‘인두금의 소리’(2019) 등 많습니다. 그는 불교와 문학의 두 갈래를 극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삶의 힘으로 승화시키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