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잼버리 사태’를 지자체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 이정록 |
| 2023년 08월 15일(화) 2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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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한류는 장난이 아니었다. 지난달 미국 방문에서 필자가 직접 실감했다.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빌딩 한쪽 벽면에 BTS 공연일정이 상세히 소개돼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노부부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들으며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워싱턴디시 외곽 주택단지 근처에 있는 작은 리쿼스토어에는 한국 소주가 진열돼 있었다. 10여 년 전과는 완전 달랐다. 그런데 K팝에 매료돼 한국을 방문한 세계 청소년들이 새만금에서 무엇을 봤을까.
잼버리에 참가한 외국 청소년들은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삼성폰으로 K팝을 듣던 그들은 ‘BTS 성지’ 한국 방문을 무척 기대했을 테다. 그래 750만원 정도 참가비도 아깝지 않았을 거다. 동남아에서 온 참가자는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하지만 그들이 야영했던 새만금은 K팝과 K한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외국 청소년들이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국가’란 인상을 가지고 갈까 봐 심히 걱정이다.
신뢰는 인간의 사회적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규범이다. 믿을 수 있어야 사귀고, 우정을 나누고, 이성과는 결혼도 하는 것 아닌가. 믿을 수 없는 사람과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였던 로버트 푸트남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도시나 지역이나 국가에 축적될 때만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이번 잼버리 사태로 한국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많이 까먹었을 것이 확실하다.
신뢰가 사회적 자본 역할을 하는 사례는 많다. 올림픽이나 엑스포를 유치하는 과정에 신뢰는 최고의 무기다. 과거의 개최 경험과 성과를 말하며 회원국을 상대로 유치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번 잼버리대회처럼 국제적 행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 또 다른 국제적 이벤트 개최를 호소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지자체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지자체가 메가 이벤트를 개최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벤트에 가면 볼거리도 많고, 안전에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서야 잠재적 관광객들이 간다. 그런데 방문해 보니, 편의시설은 형편이 없고 볼거리도 허접했다. 설상가상으로 가설 텐트형 식당에서 사 먹은 점심으로 복통까지 생겼다고 치자. 이런 경험을 많은 방문객이 했다면, 해당 지자체는 ‘불량한 곳’으로 소문날 것이 분명하다. 그랬던 지자체가 또다시 국제적 행사를 개최하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갈까. 결과는 불문가지다.
전북이 잼버리대회를 개최한 이유가 무엇일까. 새만금 개발에 필요한 거액의 정부 예산을 얻으려는 포석이었다. 전북은 2012년부터 잼버리 유치를 계획했다. 2017년 8월 개최지가 최종 확정되면서 새만금 개발은 속도를 냈다. 2018년 11월 국회를 통과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은 날개를 달아줬다. 새만금-전주고속도로, 동서도로, 남북도로, 새만금 국제공항 등의 건설은 잼버리대회 성공개최란 명분으로 수월하게 진행됐다. 잼버리를 계기로 전북은 2조원 이상의 예산 수혜효과를 봤다고 한다.
국제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국비가 투입됐으면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전북이 보여준 행정은 그렇지 못했다. 갯벌이었던 행사장은 유치가 확정된 후 매립에 들어가 작년 12월에 완공됐다. ‘아수라장’ 행정의 모델이었다. 그러니 행사가 잘 진행될 리 만무하다. ‘온열 체험장’으로 변한 야영장은 무능한 지자체와 무능한 행정의 표상으로 변질됐다. 하긴 잼버리를 유치한 최대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를 탓해 무엇하겠는가.
이번 ‘잼버리 사태’는 우리 지역 지자체들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중앙정부 예산을 수월하게 탈 목적으로 어설픈 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 지역 시군에서도 국비 확보를 목적으로 국제행사나 대규모 축제를 개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젠 그런 행태를 바꿔야 한다. 지자체 역량에 걸맞은 이벤트를 개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상실해 지역의 지속적 발전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잼버리 사태’를 우리 지역 지자체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