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오월 광주의 상흔을 새기다 오성인 시집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 최명진 기자

2023년 08월 20일(일) 18:49

‘누구보다 피의 언어를 잘 해독하고 싶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오월 광주의 상흔을 쓰는 시인 오성인의 시집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걷는사람刊)가 출간됐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같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슬픔은 한 가정과 개인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했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부터 오 시인은 그 몰락의 지점을 끊임없이 응시했고, 이 시집은 그 응시의 기록으로써 ‘어른이 되려면 슬픔을 먼저 이해해야 했다’는 고백과 함께 이어진다.

이 시집은 사연 많은 한 인간이 지나온 기억과 장소를 톺아보며 속 깊은 대화를 청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시인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대상은 자신이 발을 디뎌 온 장소들에 관한, 기억의 단편들이다. 그 장소와 기억의 중심에 ‘광주’가 있고, 시기동(정읍)·구월동(인천)·가음정동(창원) 같은 지명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시인이 골몰하는 도시는 높다란 ‘담’을 쌓은 암울한 공간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는 이 도시를 살아 있는 존재의 공간으로 회복시키려 고군분투한다. 이를테면 광주에서 태어났으나 피치 못할 이유로 고향을 떠나 살아야만 했던 그가 광주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냄으로써 ‘광주와의 거리’를 좁혀가는 적극적 행동이 시집 전체에서 드러난다.

오 시인의 시는 피폐해진 도시와 사람을 주목하고 있지만, 갖은 상처를 지니고도 존엄을 훼손하지 않으며 서서히 성장하는 인간을 그려낸다.

울분과 슬픔은 ‘나누어’ 가지는 것이라고, ‘모든 그늘은 누군가 울다 간 흔적’이므로 그 그늘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물려줄 것이 겨울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랑의 존재를 끌어안으며 시인은 기꺼이 ‘녹지 않는 눈사람’을 자처한다.

정작 크게 죄지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책감을 안고서 누구보다도 강해진 눈사람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둥글게 뭉쳐 당신에게 건넨다.

김명기 시인은 추천사에서 “오 시인의 시는 담과 벽 그리고 어둠과 죽음에 닿아 있지만, 침울이나 암울에 빠져 있지는 않다”며 “그의 시가 개인의 불행과 불운을 넘어 피폐한 도시와 사람에게로 확장되는 것도, 시가 곧 울분과 슬픔을 나누어 가지려는 인간애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 동질성을 회복하려 한다”고 평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