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블랙홀 / 남승열

2023년 08월 20일(일) 19:18

앞차에 뭉게 구름 흑백으로 피어나는
그날도 오후 3시 빵처럼 부풀었지
언덕에 나란히 누워 구름빵에 취했어

좁혀질 줄 모르는 주먹 하나 사이로
휘어진 빛을 따라 구름모자 날아가고
팽팽한 적막 속으로 사라져간 첫사랑
(시집 ‘어깨를 기대는 저녁’, 목언예원, 2023.)

[시의 눈]

첫사랑 결과가 블랙홀에 빠진 건 현란한, 그러나 비극적 순간인 듯합니다. 나도 그녀와의 시절, 갓굽는 빵처럼 부푼 데이트를 했지요. 뒷동산을 거닐 때 작은벌레를 보고 ‘어머나!’ 소리치던 때, 무슨 기적소리처럼 크게 와 들리는군요. 동네 군관산 구름을 나란히 보던 토요일 오후, 갑자기 그녀가 달려갔습니다. 한 주먹 사이 같은 사소한 오해가 있었더랬지요. 아, 눈에 띈 벌레를 장난삼아 던진다는 게…. 이후 휘어진 날개를 파득이며 사랑의 구름모자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참, 세월이 죽음 가까이와 잠겼습니다. 오늘 블랙홀로 들어간 첫사랑을 소환해 봅니다.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요? 터무니없는 희망이지만 이 시가 그리하군요. 내 다니던 학교 건너편에 붉은 기와집이 있더랬지요. 하교 때 바라보이던 그 집, 산정의 그녀는 생의 먼길을 떠나 아직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뭉게구름 시절은 가고, 검버섯 구름이 얼굴 곳곳 피어오르는데…. 남승열 시인은 경북 울진에서 나 199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조집 ‘윤이상의 바다’(2003), ‘즐거운 감옥’(2010)을 펴냈습니다. 그는 대상에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그 구조미에 내공이 강한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