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학교폭력 / 김옥희 |
| 2023년 08월 20일(일) 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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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도 ‘묻지마 범죄’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2022년 2차 학교폭력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발생 건수가 6만3천건으로 2017년(3만1천건)에 비해 2배로 증가했다. ‘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44.5%)’가 가해 이유 1순위를 차지했고, 언어폭력이나 사이버폭력의 경우 가해 학생들은 자기 행동이 폭력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피해 장소로는 학생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이용하는 교실 안(28.8%)과 복도(17.7%) 순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학폭으로 신고해도 피해 학생은 분리 기간 7일(최근 3일에서 7일로 늘어남)이 지나면, 가해 학생이 있는 교실과 복도에서 종일 생활해야 하고,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친구끼리의 장난도 못 받아주는 속 좁은 아이가 돼 따돌림이 더 심해지기도 하고, 가해자가 다수일 때는 가해 학생들이 아닌 피해 학생이 분리되는 조치가 이뤄지기도 한다. 현행 보호 제도로는 사안 조사부터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 심의가 이뤄지는 7주 동안 가·피해 학생을 완전히 분리하기에도 어려움도 크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피해 학생은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상담실과 보건실 등을 전전하기도 하고, 많은 학생이 모이는 급식실에도 들어가지 못해 점심을 굶기도 한다. 이는 결국 등교를 거부하고 학업 중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4월 정부는 무관용의 원칙으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가해 학생은 졸업한 후에도 학폭 기록이 장기 보존된다. 또한 대입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며, 학폭 기록을 삭제하려면 반드시 피해 학생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가해 학생 측에서 학생부 기록을 막으려 오히려 잘못을 부인하고, 무조건 분쟁으로 끌고 가려는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학폭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 ‘지세움(지지하기, 세워주기, 마음의 힘이 움트길)’에 온 피해 학생 대부분은 입소 초기에 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며 전학과 학업 중단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
피해 학생들은 오히려 당당한 가해 학생 행동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학교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가해 학생이 아닌 자신이 학교에서 분리된 상황에 좌절도 한다. 피해 학생들은 지세움의 가장 좋았던 점으로 자신의 편이 생겼다는 든든함을 들었다. 사소한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주고 긍정적으로 반응해주고 편을 들어주는 어른을 만난 것 같아 안심됐다는 것이다. 이 안정감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점도 꼽았다.
가장 아쉬운 점으로는 가해 학생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들었다. 피해 학생이 가장 원한 것은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가 아니다.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 재발 방지 약속이다. 가해 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가 없다면, 어떠한 중징계도 피해 학생이 학교생활로 돌아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학폭 사안 발생 초기 단계에서 가해 학생의 진정한 사과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미흡하다. 서면 사과가 있기는 하나, 대부분 처분에 따른 사과이기 때문에 진정성을 알아볼 방안이 없다.
학폭 사안 처리 초기 단계에, 가해 학생이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 학생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기회(관계 회복)가 마련돼야 한다.
학교는 관계 회복 전문가들을 사건 발생 초기 단계부터 투입해 가해 학생 측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명히 알게 하고, 피해 학생 측의 피해에 공감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수 있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모두 현시점에서 사건을 매듭짓고 다시 안정적인 학교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와 같은 절차가 있음에도 가해 학생이 피해 복구에 노력하지도 않고,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때 엄중한 처분과 불이익을 주어도 늦지 않다. 궁극적인 해결은 바로 ‘사과와 용서’다.
진정한 사과와 진심 어린 용서가 있어야만 피해 학생은 비로소 학교폭력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학교로 자신 있게 돌아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