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물 위를 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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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무덥던 여름날,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란 정호승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신록이 짙은 그늘을 드리운 숲속의 신작로를 천천히 걸었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온다. 승선교(昇仙橋), ‘신선이 되는 다리’라! 이름도 참 멋있다. 다리 너머로 이층 누각의 이름은 강선루로 신선이나 선녀가 강선루로 내려와 계곡에서 목욕하고 승선교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간 모양이다. 절 앞 다리와 누각이 도교적 이름을 가진 것도 좀 특이하다.
또 승선교 아래로 내려가서 보아야 할 것이 홍예 정중앙에 삐죽 나와 있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다. 예로부터 용머리를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 용머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에 유난히 이끼가 끼어 있고 여의주 작은 구멍에 철사로 동전 하나가 끼워져 있다. 이 동전 한 닢의 의미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말들이 전해지지만 내 근심 때문인지 이끼는 욕망의 얼룩처럼 보이고 동전은 세속의 침처럼 느껴진다.
세상은 어지럽고 날씨는 더운데 탁족으로나 시원함을 찾아볼까 하여 개울로 내려가 유유자적하게 발을 담근다. 10분이 지나니 다리가 차가워지고, 30분을 담그니 몸이 시원해지며, 60분을 보내니 마음마저 시원해진다. 승선교는 그 짜임새가 정교하여 탁족하며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속계에서 선계를 꿈꾸게 하는 명상의 공간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칼릴 지브란’의 말로 답한다. ‘고요하여라 나의 마음이여!’
<선암사에서 화가 강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