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과 멈춤’ 속 조화 이루는 山水를 만나다 2023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둘러보니… ‘머리를 위한 선’ ‘TV 부처’ 등 백남준 작품부터 운림산방 배경 산수화 담아낸 미디어아트까지 시대·세대 초월…전통 수묵 다채로운 시도 눈길 최명진 기자

2023년 09월 03일(일) 19:45

영호남 작가 교류전이 열리고 있는 진도향토문화회관 전시장 전경.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에 마련된 ‘미래는 수묵이다’ 전시장.

다채로운 수묵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 주제인 ‘물드는 산, 멈춰선 물’처럼 산과 물이 서로 섞이고 조화를 이루는 지점을 찾아낸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전통 수묵화부터 미디어아트까지 장르는 다르지만 수묵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느낌을 받았다.

2023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목포와 진도 일대를 찾았다.

출품작들은 대작과 신작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참여작가 중 80% 이상이 한국화 작가들로 포진돼 수묵의 전통은 물론 다양한 시도를 통한 결과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현대수묵Ⅰ 산-물, 바람-빛’을 주제로 하는 비엔날레 1관 목포문화예술회관은 한국화를 비롯해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공예, 조각 등 수묵의 확장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을 총망라했다.

대표적인 중견 수묵작가와 해외작가들이 참여하는 이번 섹션은 수묵산수를 통해 힐링과 명상을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2층 제3시실은 이번 수묵비엔날레의 프롤로그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화 출신 작가들의 신작들로 채워진 이 전시실은 뒷쪽엔 산, 앞쪽에는 물이 자리잡았다. 동양사상에서 기원되는 산과 물의 개념을 현대 수묵으로 어떻게 풀어가는지 보여준다.

벽 한쪽을 가득 메운 오용길의 수묵담채는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을 모두 담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평범한 일상 모습에 천착하는 작가는 수묵과 채색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생생한 현장감과 생동감을 표현한다. 그의 작품 ‘사계’는 인생의 유년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를 각각 계절에 대입, 한 화면에 담아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드러낸다.

예술의 영역을 확장, 수묵정신을 담고 있는 백남준의 걸작들도 자리잡고 있다. 머리카락에 붓처럼 잉크를 묻혀 신체의 미세한 움직임의 흔적을 남겨놓은 ‘머리를 위한 선’을 비롯해 한국인의 강인한 기상을 보여주는 영상 작품 ‘호랑이는 살아있다’, 동양적 지혜의 상징인 부처가 현대문명을 의미하는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을 연출한 ‘TV 부처’ 등이 눈길을 끈다.

서양화이지만 마치 먹그림을 보는 듯한 장욱진 작가의 ‘나무’, ‘아이들’ 등은 장르를 떠나 자연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으며 권세진 작가의 수묵 작품은 예측 불가능한 아름다운 바다의 물결, 윤슬로 섬세한 움직임과 흐르는 시간을 담아낸다.

마치 예배당이나 기도 공간을 연상시키는 듯한 암실에 들어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듯하면 사방에 붙어있는 먹 그림을 마주할 수 있다. 카시오페아 별자리를 닮은 더블유 모양의 이 그림들은 김혜련 작가의 ‘예술과 암호-반구대’ 작품이다. 간결하지만 반복되는 형상은 신비하면서도 경외감을 준다.

비엔날레 1관 1층에서는 15개국 20여명의 해외 작가들이 15일간 이곳에서 그린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소개하고 있다.

목포 유달산 입구에 자리한 노적봉 예술공원 미술관은 비엔날레 2관으로 활용된다. ‘검은 바다 솟는’을 주제로 하는 이번 전시관은 유명 중견작가와 젊은 작가가 다양한 시선으로 재해석한 수묵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고전 수묵화의 작법과 순정만화 속 남자 주인공 모습으로 풀어낸 김화현 작가의 ‘서정’, ‘VIRTUE’ 작품을 비롯해 하얗게 물보라 치는 파도가 연상되는 이은실 작가의 ‘솟음’, ‘깊은 곳’ 등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목포 근대 문화유산 공간인 ‘대중음악의 전당’에선 한국화 전공 30여명의 대학생 작품과 전국 50여명의 초등학생 작품을 전시하는 ‘어린이 수묵제’가 펼쳐지고 있다. 전문가 못지 않은 학생들의 수준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어린이 작품들에서 수묵화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4·5·6전시관이 자리잡은 진도에서도 다양한 수묵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진도향토문화회관(6전시관)에서는 ‘묵연’을 주제로 영호남 작가 교류전이 열리고 있다.

진도 주 전시관은 소치 허련 선생의 화실로 유명한 운림산방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4전시관인 남도 전통미술관에서는 ‘운림, 구름이 스미는 검은 숲’을 주제로 최근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대표적 한국 화가들의 신작이 모여있다. 현대에서 다양하게 변용, 해석돼 생동하는 수묵화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제5전시관인 소치1·2관에서는 문인화적 풍모를 보여주는 대가들의 산수화와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다. 수묵과 자연의 조화를 묘사한 전시 라운지를 비롯해 다양한 수묵의 모습을 담아낸 산수화 미디어아트 작품은 완벽한 몰입환경을 제공한다.

이건수 총감독은 “이번 수묵비엔날레에서는 예년에 비해 작가 수를 줄이고 내실화 작업을 거쳐 퀄리티를 높였다”며 “묻혀있던 전통 회화의 진정성을 재발견하고 우리 시대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의 확장을 시도하며 지역 비엔날레의 가능성과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0월31일까지 이어진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