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강연: 내 강연에 만족하지 못한 날의 일기 / 박남기
2023년 09월 07일(목) 19:36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모 교육연수원에서 신규 임용 예정 초등교사 대상 강연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주제는 “최고의 교수법 그리고 교사의 성장”이었다. 프로그램을 담당한 연구사가 아마도 내 책 두 권 ‘최고의 교수법(2017),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2008)’을 읽고 그 책 제목을 주제로 삼았던 모양이다. 연수생이 많아 오전과 오후 두 반으로 나눠 3시간씩 강의를 하도록 돼 있었다.

오전 강의를 시작했다. 준비한 첫 동영상(재미있는 반전이 숨어 있는 유튜브 동영상)에 어느 정도 반응을 보이더니 다음 동영상을 바탕으로 질문부터는 무응답, 무반응이 이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무반응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강의 중간에 게스트 스피커를 등장시켰다. 그분이 15분 정도 강의를 할 때 나는 연수생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파악했다. 몇몇 자는 사람,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사람, 심지어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질문을 해도 반응이 별로 없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잘 웃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강연장 여건이 열악했던 것일까? 너무 덥고 환기가 잘 되지 않았으며 단상으로부터 뒤까지의 거리도 너무 멀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비록 대형 강의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대놓고 자는 사람들이 있는 강의는 최근에 해본 적이 없다. 대학 교수들 대상 강연을 해도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그들은 달랐다. 설 연휴가 막 끝난 후라서 그랬을까? 어려운 임용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니 자부심도 크고, 합격의 기쁨에 넘쳐 있으며, 새로 만날 아이들 생각에 눈을 반짝일 것으로 생각하며 너무 많은 것을 주고자 했던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문제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로 원인을 분석해보려고 해도 잘 모르겠다.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강의였는데도 불구하고 담당 연구사와 게스트 스피커는 내 강연이 너무나 재미있었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 제공했어야 했는데 그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끝낼 시간을 착각해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등등이 내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이유였을 수도 있다.

오후 강의에서는 오전을 떠올리며 일부러 강의실 측면과 뒷면 문을 개방해 환기를 시켰다. 오후반은 오전반과 반응이 너무 달랐다. 짧은 점심시간 직후에 이어지는 강의이니 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연수생들은 질문에 열심히 답을 해줬고, 강의에 반응을 보이며 웃는 연수생들도 훨씬 많았다. 앞자리를 모두 채웠고, 자거나 조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강의가 끝나자 앞으로 나와 감동적이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연수생, 연수교재를 들고 와 거기에 사인을 해달라는 연수생도 여럿 있었다. 내 스스로에게 썩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오전 강의만큼 힘들지는 않은 강연이었다.

뭐가 오전과 오후반의 반응 차이를 가져왔을까?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지만 잘 모르겠다. 모두 같은 임용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고, 무작위로 반을 나눴을 것이므로 연수생의 특성에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 강연 준비 과정에서 하나 놓친 것이 있다. 다른 강연을 위해서는 강의 주제와 관련해 어떤 내용을 포함시키면 도움이 될지에 대해 사전에 직간접적으로 조사를 하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오늘 강연에서는 이러한 준비를 하는 대신 그들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그들의 마음 자세를 넘겨짚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준비를 하고 강의를 진행했다. 그들이 교단에서 오래 기억하며 제자들과 함께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될 내용을 내 생각대로 준비한 것이 오류였을 수 있다. 신규 임용 예정자 대상 연수를 여는 첫 강의를 맡게 된 강사로서의 설렘을 가지고 혼자서 기대를 크게 한 것도 문제였을 수 있다.

강연을 하다보면 스스로에게 만족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만족한 강연은 잊히지만 오늘처럼 만족하지 않은 강의는 오래 기억에 남으며 나를 성장시킨다. 아픔만큼 성숙한다는 유행가 가사가 가슴을 스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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