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대 / 천세진
2023년 09월 10일(일) 19:46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도 사회적 애도 문화가 생겨났다. 이전에도 사회적 애도가 있었다고 말하겠지만, 이전의 애도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이들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들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정치가나 유명인사의 죽음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참여하는 애도는 사회적 애도라기보다는 공적 애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양상은 같지만, 사회적 애도와 공적 애도는 죽음을 대하는 감정이 다르게 나타난다. 공적 애도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던 이에 대한 흠모에 따른 감정적 여운이 짙게 나타나지만, 사회적 애도에서는 정서적 공감과 유대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공적 애도의 대상이 된 죽음은 문제적이지 않지만, 사회적 애도의 대상은 문제적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생겨난 사회적 애도의 대상은 대중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이들의 죽음이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과 인연이 없었고, 사회적으로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그 사회가 타인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지금의 애도는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 어두운 한국 사회의 현실이 아프게 담겨 있을 뿐이다. 최근 사회적 애도의 대상이 된 이들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니다. 하나같이 우리 사회가 만든 부조리와 불공정, 탐욕과 잔혹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의 사회적 애도는 희생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이자,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비정한 불의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인간의 가치를 무시하는 작업 환경에서 죽어간 청년들, 부모에게 맞아죽고 굶어죽은 아이들, 제 자식밖에는 모르는 부박하고 편협한 학부모와 교육 당국의 방기 속에 죽어간 젊은 교사들, 군·중앙·지방행정조직을 막론하고 원칙을 지키지 않은 지시에 의해 사지로 내몰린 이들의 죽음은 하나같이 한국 사회의 악성 구조가 낳은 것들이다. 그 독성 강한 현실이 곧바로 나에게, 나의 가족에게 다가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빈소로 달려가 애도하고 분노한다.

롤랑 바르트(1915-1980)의 『애도 일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사회에 전에 없던 애도의 형식이 새로 생겨나거나, 애도가 전에 없던 크기로 퍼져나가고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 겪은 슬픔과 좌절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죽음 이후에도 슬픔의 무게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르트가 쓴 것처럼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이 드러난 것이다.

애도는 인간적이다. 인간적이기 이전에 자연적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고등 동물들 대부분이 가족과 인척, 친구의 죽음을 애도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적 애도에는 인간적이지도 않고, 자연적이지도 않은 어두운 사회적 실상이 원인이 되어 나타난다.

모리스 블랑쇼(1907-2003)는 『우정』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은 꼭 정말 인간다워져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생물체와 구분되어서가 아닌 것이다. 그 차이를 분명하게 느끼면서도 그 차이를 없애려는 모호한 힘이 불쑥 솟아날 때 오히려 정말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획득한 비범한 능력으로 영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비범성을 차라리 방기할 때, 아니 없애버릴 때, 아니, 그런 대가를 기꺼이 치를 때 더 인간다워지고 영예로워지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것은 다른 생명체와 공유하는 미덕을 함께 갖는 것을 떠나서 더 높은 수준으로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풍경은 인간다운 사회를 향한 노력이 구현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이다. 각자 도생이 운위(云爲)되는 사회는 더는 공동체가 아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점점 잦아지고 있는 사회적 애도는 우리 사회가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탄광의 카나리아’이고, 깊어질 대로 깊어진 병의 징후다. 그걸 빨리 눈치채고 지금이라도 인간다움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인구 감소로 소멸하기 이전에, 공동체로서의 생명력을 잃는 것으로 인해 더 빨리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jdaily.com/1694342772610925028
프린트 시간 : 2024년 07월 17일 04:0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