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문학 백일장]산문 일반부 최우수상 / 황정애
2023년 09월 11일(월) 19:27

<광천동(光川洞)을 사랑합니다.>

“이 씨발놈에 새끼야. 좆 달린 새끼야.” 할아버지가 광천동슈퍼 아저씨 멱살을 틀어잡았다. 퍽 하고 할아버지가 맨바닥에 쓰러지셨다. 시멘트바닥에 꽝 하고 할아버지 머리가 부딪쳤다. 싸움 구경을 하는 사람들이 삥 둘러섰지만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말리는 사람도 없었고 불구경을 했다. 나도 담장너머 벽돌 구멍으로 내다보았다. 슈퍼아저씨는 머쓱해진 손을 탈탈 털고 소금 한주먹을 뿌렸다. 다음날 나는 그 현장을 지나갔다. 어디엔가 핏방울이 선연하게 보인다고 땅바닥을 훔쳐봤다. 슈퍼는 금방이라도 문을 밀면 열릴 것 같은 얇은 철판 소리가 들렸다.“아짐씨! 모자가 잘 어울려요?”얼굴 반들반들하게 생긴 슈퍼 아저씨가 휘파람을 불며 문짝을 후딱 열고나올 것 같았다.

‘광천동을 사랑합니다.’ 광천동슈퍼 그 붉은 글씨는 깃발처럼 휘날린다. 한겨울이면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장작 난로를 피워 놓고 화투판을 돌렸다. 막걸리 한 사발에 취해 얼씨구절씨구 덩실덩실 춤을 추고 계셨다. 한때 이곳은 플라스틱 공장이 있고 파고다빵공장도 엿공장도 있었다. 광천동파출소 소장인가 먼 친척도 엿공장을 하다 말아먹고 지금은 어디서 산 줄도 모른다고 했다. 파고다빵공장 자리는 작은 술집도 많았다고 했다. 그 골목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내 옷자락을 붙잡는 것 같아 길을 멈췄다. 청년들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 다녔다고 했다. 소녀는 빵공장에 다니면서 빵 한조각도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의 옷에 묻어 있는 빵 냄새를 길게 맡아봤다고 했다. 허기와 함께 들이켰던 빵 냄새는 사라지고 공장 굴뚝을 타고 흘렀던 매캐한 연기자국만 시커멓게 남아 오래 만져봤다고 했다.

엿이 졸아지는 골목에 나 혼자 서성거린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이제 가시나무처럼 찢어져서 집을 버린 지도 오래다. 이 집은 공부깨나 한 아주머니가 살았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언제나 신세 한탄이 많았는데 문구멍으로만 세상을 훔쳐보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해 아들이 목을 매달아서 죽었다고 했다. 내 양팔을 벌려 골목을 재본다. 양팔을 벌리고 나면 한두 뼘 정도 남는다. 황토 흙이 삐죽이 나온 집터를 한 손으로 털어내 본다. 아무리 듣고 싶은 말소리는 탱자꽃 속으로 숨어버렸다. 빵공장에 다니는 아가씨의 웃음소리가 금방 켜져 나도 모르게 입술에 손을 갖다 댔다. 오동나무가 보라색 종을 매달아서 댕댕 울렸다.

이제 광천동은 재개발이 눈앞이다. 공인중개사가 우후죽순으로 넘쳐 난다. 집집마다 우편물이 하나씩 추가되어 부쳐져 온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쑥덕거린다. 집이 있는 사람과 집이 없는 사람은 구분이 간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예전과 같이 평화로운 발걸음을 딛지 못한다. 오히려 목소리도 기어들고 걸음도 더 쳐져 걷는다. 오히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확연히 집 없는 서러움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더 아파해야 한다. 집이 없는 아이들도 학군이라는 말도 꺼내지 않고 쉬쉬 하면서 학교에 가서도 큰소리치면 안 된다. 자칫 학교도 2군 3군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이사비용이나 받고 소리 없이 이곳을 도망치듯 내빼야 한다. 오히려 삼엄해진 가정이 집 없는 가정이다. 이리저리 눈치 봐가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처신을 해야 한다. 자칫 공인중개사 사람들이 집을 몽땅 사가 버려 집주인 얼굴이 바뀐 집도 많다. 보일러, 수도가 고장이 나도 침묵해야 된다. 담장이 내려앉고 지붕이 새도 참아야 된다. 재개발이 되면 모든 현수막들이 철거되고 광천동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내 마음속으로는 재개발이 안 되기를 비는 마음도 있었다. 피 튕기는 싸움은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몫일까? 집이 없는 사람들은 현수막을 봐도 그렇고 재개발이 진행되어도 그렇고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되는 것일까? 집이 있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몰려다니면서 선물을 받곤 한다. 상가건물이 오래되긴 했지만 태권도학원 왕퀵이던가. 그곳에 광천동 재개발 사업소가 있다. 나도 무슨 일이 있어 그곳에 방문한 적이 있다. 산더미같이 계란을 쌓아놓았다. 한번은 옆집에 사는 집 없는 여자가 선물을 받으러 갔다고 도둑년하면서 질질 끌려 나온 적이 있었다. 잠자리채 같은 사다리차가 뒷골목에 죽치고 있었다. 여성발전센타 청소하러 다닌 아줌마가 나더러 “어이, 자네 선물 받았는가? 이번에는 법랑냄비라고 해. 그 돈이 다 우리 돈이제. 즈그들 돈이랑까?” 차마 월세로 산다는 말은 못하고 그냥 예하고 얼버무렸다.

“복길아 배고프제. 밥 먹고 가.”

“작은 엄니, 우리 집에도 밥이 있어. 성님이 알면 어쩔란가.”

“왔다. 내가 배고파서 참에 먹었다고 할란께. 어서 한술 뜨고 가거라.”

종로마트 있는 큰 대로변에 전봇대만 보면 작은 엄니가 생각난다는 할머니가 계셨다. 다섯 살에 엄마 죽고 작은 엄마만 기대고 살았다고 했다. 시방 사람들은 옛날만치로 다정하지 않다고 쯧쯧 혀를 차곤 했다. 할머니 집에 들렀더니 고추 몇 개 따가라고 했다. 옥상 구경하라고 해서 올라갔더니 깜짝 놀랐다. 비가 온 뒤끝이라 물통에 가득 물을 가득 받아놓았다. 고추, 깨, 생강, 대파,.....

할머니는 내게 재개발이 되어도 몸 성하지 않지만 텃밭을 일궈야 된다고 일러주었다. 올해 나도 재개발과 함께 이삿짐을 꾸리게 된다.‘광천동을 사랑합니다.’그 간판을 걸었던 얼굴 반들반들한 슈퍼 아저씨도 이사를 갔다. 광천동에 살면서‘살아야지’ 문득 그 말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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