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관점에서 바라본 행복한 삶 / 김영식
2023년 09월 11일(월) 19:56
김영식 남부대 교수·웃음명상전문가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조석으로 시원한 바람이 살살 불어오니 산책하기도 좋은 아침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후배와 차 한잔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울에 업무차 갔다가 지하철에서 본 풍경을 필자에게 이야기해 줬다. 우스갯소리로 서울 지하철은 학원과 병원 광고가 먹여 살리고 있다고 했다. 학원강사와 의사들의 얼굴, 팔짱낀 포즈, 광고문구들이 비슷하다고 언급하면서 지하철 좌·우측 벽면이 학원과 병원 광고로 즐비하더라는 것이다. 그 장면이 바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의대만을 가기 위한 사교육이 증가하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의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연봉 수십억의 일타 강사의 사랑 이야기가 드라마의 소재이고, 대형병원 의사들의 사랑과 이별이 드라마의 소재가 되는 현상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돈을 쫓아가는 오징어 게임처럼, 수많은 사람이 죽고 쓰러진 후에 마지막 황금을 거머쥔 소수의 성공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과연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생각해 본다.

후배는 요즘 자신이 왜 돈을 버는지에 대한 자문자답을 이렇게 표현했다. 돈을 벌어서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어 공리주의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공리주의? 학교 다닐 때 한 번쯤은 들어왔을 고전 규범윤리 이론이다. 공리주의는 영국의 제러미 벤담과 제임스 밀 등에 의해 주창됐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이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명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공리주의자에게는 최대 다수가 최대 행복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 선하고 정의로운 행동이라는 뜻이다. 공리주의 입장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 중 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현대인들이 행복한 삶과 웃음을 잃지 않는 삶을 위해 공리주의적 입장으로 해석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적 연결과 협력을 강화하는 사회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 참여, 자원봉사 활동, 친구와 가족과의 소통 등을 통해 사회적인 연결을 증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공평성과 정의를 중요시해야 한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이해와 협력을 통해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와 혜택을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실현을 중요시 해야 한다. 흥미로운 취미나 관심사를 발견하고, 꾸준한 학습과 성장을 추구하여 자기실현의 기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들어 교육 현장에서 웃음힐링 강의를 많이 요청하고 있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필자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함이 많은 것을 느낀다. 교사들의 권한과 존경, 교사의 복지와 근로 지원, 사회적 관심과 올바른 이해 등이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교사, 학생, 학부모의 삼각관계는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인 천·지·인의 삼재(三才) 사상처럼 하늘과 땅과 인간은 하나라는 사상과 궤를 같이할 것이다. 그래서 항상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학생이 하나되는 교육현장의 행복을 주장해 왔다.

20년 전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외쳐 지지를 받아 국회에 입성했던 정치 정당의 구호는 실패했다. 출생률 0.7%의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을 거부하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반세기도 지난 철 지난 이념을 다시 꺼내서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남녀를 갈라치기하고, 세대를 갈라치기하고, 학교 현장을 갈라치게 하면 우리 사회가 갈 길은 자명하다. 개인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이다. 약 400억 년이라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후손들인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엄청난 문명과 문화를 만든 것은 바로 ‘생각하는 힘’(The Power of Thought)과 소통(疏通)이었다. 개개인의 올바른 윤리적 사고와 소통을 통해 사회를 갈라치기 해서 뒤에서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반공리주의적 세력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사회를 올바로 보는 눈을 키우는 방법은 “이면(裏面)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시각적 지평을 가지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한 삶은 결국 자신의 생각의 크기와 무관하지 않다. 자신의 손을 움켜쥐기 보다는 손바닥을 펴고 손뼉을 치며 웃는 것이 더 공리주의적 행복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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