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시·공간 속 또다른 ‘나’를 찾아서… <은암미술관 기획 청년전 ‘소우주-연결’ 리뷰> 스테인레스·XR·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매체 활용 작가 9팀 참여…사유·성찰 담은 실험적 세계 선봬 최명진 기자

2023년 09월 18일(월) 19:36

서지수 작가의 ‘가느냐, 가지 않느냐:그것이 문제로다’

백나원 작가의 설치작품 ‘궤도’

박기태 작가의 스테인레스 용접 작품

개개인을 의미하는 소우주, 자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하나의 세계를 일궈온 청년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소우주-연결’이라는 주제로 은암미술관에서 펼쳐진 이번 기획전에서는 실험적이지만 완성도 높은 청년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독창적인 작품들이 즐비했다. 가장 먼저 마주한 작품은 박기태 작가의 스테인레스 용접 작품 ‘kiss-3’. 소의 머리 형상이 바닥에 주둥이를 댄 상태로 땅에 입맞춤하는 듯한 모습이다. 작가는 반복적인 용접 작업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파편화됐던 자아를 회복한다.

박인선 작가의 회화 연작 ‘물줄기’는 물이 갖는 특성을 소재로 한다. 땅과 바다가 뒤섞여있는 형태는 현실인 듯 현실이 아닌 세계를 나타낸다. 각자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이야기한다.

실감형 콘텐츠를 통해 돌탑을 쌓아볼 수 있는 체험형 작품 ‘돌탑비보’도 마련돼있다.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연구원 박주영·최인영·신춘성 3인의 결과물이다. 직접 손으로 돌을 집어 다른 돌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는 방식이다. 쉬워 보이지만, 하나의 탑을 완성하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따른다. 이 작품은 세대를 연결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노년세대의 기억인 ‘돌탑쌓기’가 초실감형 기술인 ‘XR체험’으로 구현됨으로써 아동 및 청년세대는 자연스럽게 이를 향유하게 된다.

노트북 속 마우스 커서를 주인공으로 하는 인터뷰 영상도 상영되고 있다. 서지수 작가의 ‘가느냐, 가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특별한 발상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사람의 손을 대신해 가상공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커서는 과연 미래에 우리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현대사회 속 기술에 맹목적으로 끌려다니는 인간 존재가 주체성을 갖고 살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전시장 조명을 반사시키며 빛을 내는 백나원 작가의 ‘궤도’는 일상에서 겪는 빛의 존재와 그 빛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했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순서대로 움직이는 아크릴판은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2층에 올라서면 눈코입이 흐릿하게 표현된 사람 모습이 담긴 나혜원 작가의 회화가 벽면에 내걸려있다. 작가의 자화상들이기도 한 이 그림들은 작가가 마주한 자기 자신이다. 외국에서 생활했을 때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낀 작가는 불완전하고 일시적인 자신의 감정을 이처럼 무한하게 변화하는 얼굴을 통해 드러낸다.

바로 옆에는 햇빛을 받아 은은한 빛을 내는 나뭇잎을 형상화한 정소영 작가의 회화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한획 한획 그어진 나뭇잎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움직임과 잎 사이사이를 비추는 반짝거림을 나타내는 듯했다.

단편적인 삶의 단상들이 빔프로젝터를 통해 상영되고 그 앞에 빠르게 회전하는 조이트로프 기계가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낸다. 박주영·최인영·황민지 청년작가 세 명으로 구성된 예술단체 터전126의 작품이다. 사람이 태어나 삶을 살아가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보여준다. 매일의 삶 속에서 많은 벽을 마주하는 우리의 불안함과 괴리감을 나타내면서도, 우리 삶을 반복되는 잔상 속 치르는 하나의 ‘의식’으로 설명한다.

전시장 안쪽 캄캄한 공간에서는 인도 출신 작가인 비 아재 샤르마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명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작품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공간을 꾸몄다. 최근 화두가 되는 기후위기 속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명상 과정을 통해 이를 특별하게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이어진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