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그랬으면 좋겠다 / 최양숙

2023년 09월 24일(일) 19:54

최양숙

난생 처음 밭을 사서 언 땅을 걸어봤다
봄 햇살 올 때까지
내 몸도 불러내어
알 슬어
배불러오면
엄마 노릇 참 좋겠다

해 두 개 달도 두 개
가지 심고 오이 심고
알곡은 참새에게
땀내는 바람에게
풋사과
익을 때쯤에
네가 오면 참 좋겠다
(시집 ‘활짝, 피었습니다만’, 이미지북, 2023.)

[시의 눈]

텃밭에서의 희망은 그곳 수확뿐이 아니지요. 함께 하는 이와 나누는 웃음이 갈비뼈에 와 부딪칠 때, 풋사과 때가 지나고 고구마 작황이 좋아 누군가 부르고 싶을 때도 작동되는 에너지이지요. ‘해 두 개 달도 두 개’이듯 그이와 내가 스륵스륵 나무를 헤쳐갑니다. 백아산 뒤 두어 마장으로부터 온 소슬바람이 참새 몫 수수다발에 늘어집니다. ‘안 한다, 다음에 한다’, 이렇게들 지연시키다 작년 봄 결혼한 아이네 식구가 올듯한 그 주말입니다. 엄마 노릇 잘하러 오이며 고추며 따 담자 ‘알슬’듯 저절로 몸피 또한 불어납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두근두근 해거름 끝 마을 어귀를 나가봅니다. 아니, 낯선 승용차 한대 뿐이군요. 아마 사과가 더 익을 때를 기다리는가 봐요. 최양숙 시인은 광주에서 나 1999년 ‘열린시조’ 봄호로 등단해 시선집 ‘새, 허공을 뚫다’(2017)를 펴냈습니다. 그는 여성성의 시관을 통해 자신이 처한 공간으로 들어오는 어둠을 늘 여명의 빛으로 껴안고자 하는 투명한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