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투. 유.(Talk to you) / 김남천
2023년 09월 26일(화) 19:26
김남천 광주시 여성정책팀장
예기치 못한 우기와 무더웠던 여름과는 작별인사를 하고 선선해진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비오는 오후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무슨 노래였을까? 여느 때처럼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왜 대부분의 노래는 사랑에 관한 걸까? 달콤한 사랑, 그리고 애잔한 이별, 이 모든 게 인생의 전부일까? 여느 가수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이래’ 사랑을 노래한 것이 가요뿐이랴, 셰익스피어가 노래한 것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었고 호메로스 역시 파리스와 헬레네의 잘못된 사랑(?)과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뜨거운 사랑을 노래했다. 이렇듯 삶이 사랑일텐데, 진정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해야 할 젊은이들이 이제는 서로를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무슨 일일까? 인류는 지금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르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이대남 이대녀가 사랑하지 않겠다고, 아니 만나지도 않겠다고 하니 참으로 가슴이 먹먹하다. 그칠지 모르는 물가와 치솟는 집값 그리고 결혼, 연애, 출산을 포기한다는 N포세대 이야기를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젠더갈등까지 불거져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남’, ‘한녀’ 등 입에 담기도 민망한 혐오성 발언이 흘러나오기 시작할때는 괴담 수준으로 치부하며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사이버 세계에만 머물거라 착각했던 젠더갈등이 물리적 실체를 가지고 나타나게 되리라고는 차마 생각을 못했는데,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된 것 같다.

일부 소개팅 앱에서는 흡연여부 및 종교에 더해 정치성향을 필수적으로 기입하게 하고 있으며 소개팅하러 가기 전에 상대방의 sns를 미리 탐색해 정치성향을 파악하고 만나는 경우도 흔치 않다고 한다. 급기야는 지난 대선과 지선을 통해 이대남과 이대녀가 집단적으로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경향마저 보였다. 사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젊은 세대는 진보적이고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닐 텐데 최근 20대에서 나타나는 성별 쏠림현상은 예사롭지 않다.

지난 2021년 여성가족부 양성평등실태조사를 보면 20대 남성과 여성 모두 전통적 성역할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남성은 자녀 양육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20대 여성 역시 가족의 생계는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듯 진보적이며 성평등한 인식을 가진 20대가 ‘우리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 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20대 여성은 73.4%가 동의한 반면에 20대 남성은 29.2%만 동의한 것이다.

정말로 이대남과 이대녀는 서로를 싫어하는 것일까?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말하자면 이대남과 이대녀는 서로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영국의 동물학자 매트 리들리가 ‘붉은여왕’이라는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남성의 일반적인 특징은 어떤 것이든 여성의 성 선택에 따른 결과다. 남성의 일반적인 특징은 그동안 여성들이 그러한 특징을 지닌 남성을 좋아해서 선택해온 결과이기에 싫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니 매우 좋아하는 특징인 것이다. 여성의 특징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듯 서로 좋아하는 특징을 가진 젊은 남녀를 다시 만나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먼저는 이대남과 이대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단순히 불만이라고만 치부하지 말고 테이블에 올려 의제로 다뤄주는 것이 어떨까? 당장 이견차를 좁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갈등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남자는 군대에 가고 자녀에게 아빠의 성을 물려주는 것도 그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성범죄와 관련된 형사사법제도’, ‘할당제’, ‘임금격차’ 등 이대남과 이대녀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주제들이지만 언제까지 피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젠더갈등의 원인은 일자리 문제라고, 다시 경제를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늘리면 된다는 어른들의 해법에 만족해 할거라고 낙관할 수도 없다. 엄연히 존재하는 갈등을 애써 모른척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갈등이 있다는 건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민주주의사회에서 당연한 것 아닐까? 그래서 제안한다. 톡. 투. 유.(talk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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