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못질 / 고정선

2023년 10월 03일(화) 19:10

고정선

썩은 판자 빼내고
새것 끼워 맞춘 후
알맞은 쇠못을 고르다 하는 생각
살면서
말로 한 못질
치수 잰 적 없었지

가슴에 박힌 못은
길든 짧든 한(恨)인데
뱉어버린 말 허물 녹슨 지 여러 해라
빼려면 더 아프겠지
그냥 가자
미안해
(시집 ‘눈물이 꽃잎입니다’, 책만드는집, 2019.)

[시의 눈]

박힌못 투성이인 사과 궤짝을 해체해 토끼장을 짓던 때가 있었지요. 닳아진 장도리 이빨 사이로 그 녹슨 못을 빼며 토끼를 가진 친구를 참 부러워했지요. 다된 토끼장을 뻐기며 보던 둘의 그림이 늙은 이마에도 못자국처럼 찍혀 있습니다. 친구는 지금 대처에 큰 요양병원을 짓고 그곳 원장이 되었습니다. 한데, 녹슨 못을 능숙히 빼던 친구는 목수가 되어 지금껏 집을 짓고 다닙니다. 가난을 뽑아버리듯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 일을 이어갔던 게지요. 하지만 때로 헌 각목의 못을 뺄 때, 그는 그만 못대가리를 꽝꽝 처박고 만답니다. 빼는 것보다 차라리 제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감추어두고픈 생각에서지요. 그는 방수장갑 낀 손으로 사랑스럽단 듯 그 박힌 못을 잘 쓰다듬습니다. 아마 거기 안개이듯 떨어진 제 눈물을 닦는지도 모르지요. 고정선 시인은 전남 신안에서 나 1986년 ‘아동문예’, 1993년 ‘시세계’, 2017년 ‘좋은시조’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비는 산을 울리고’(1997), 동시집 ‘먹장구름 심술보’(1995) 등을 펴냈습니다. 그는 대상과 자신이 한 묶음이 되도록 순리의 서정화를 지극 실천하는 정형의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