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522) 스승님 어디에서 오시느냐고 물어보았더니만

2023년 10월 17일(화) 20:35

磧川寺過方丈英禪師(적천사과방장영선사) - 청천 신유한
掃石臨流水 問師何處來 (소석임류수 문사하처래)
師言無所住 偶與白雲回 (사언무소주 우여백운회)
흐르는 물가에서 돌을 쓸어놓고
스님이 어디에서 오시냐고 물었는데
스님이 대답하시길 구름과 짝이라네.

스님의 거처는 일정치 않았다. 가는 곳이 집이요 대화를 나누거나 선방에 드는 곳이 선실이었다. 필요에 따라선 곡주도 한 사발한 곳이 주점이요, 돌 위에 앉아 하늘을 보며 깊은 사색에 잠기는 곳이 사색의 장이었다. 시적 상관자인 방장스님도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인생은 괴나리봇짐 하나 짊어지고 떠난 먼 여행일지니. 꿈의 대사가 대답하기를 일정하게 머무는 곳이 없이, 흰 구름과 짝하면서 다닌다고 하시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스승님 어디에서 오시느냐고 물어보았더니만(磧川寺過方丈英禪師)으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1681-1752)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705년(숙종 31) 진사시에 합격하고 1713년 증광문과에 급제했다. 1719년 봉상시첨정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시에 걸작이 많고 사(詞)에도 능했다. 저서로 ‘해유록’, ‘청천집’, ‘충서난록’ 등이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흐르는 물가에 돌을 한 무더기 쓸어놓고 / 스승님 어디에서 오시느냐고 물어보았더니 // 대사가 대답하기를 일정하게 머무는 곳이 없이 / 흰 구름과 짝하면서 다닌다고 하시었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적천사를 지나며 영선선사께 드림’으로 번역된다. 적천사는 경북 청도군 청도읍 원리 화악산(華岳山)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로 알려진다. 유서 깊은 사찰을 지니면서 스님께 안부를 묻거나 서신이라도 남기고 떠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 선현들의 정은 이렇게 찾아뵙거나 자리를 마련해 모시는 극진함을 미덕으로 여겼다.

시인은 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선방이 아닌 물가에서 돌을 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묻는 시인의 질문에 선사의 명쾌한 대답은 시상이 철철 넘치는 느낌을 받는다. 흐르는 물가에 돌을 쓸어놓고, 스승님 어디서 오시는 길이냐고 은근하게 물어보았다 했다. 스님이라고 해서 꼭 선방에만 있을 수는 없다. 정처 없이 떠돌면서 삶을 알고 인생을 아는 것도 그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화자는 정처 없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오직 자연과 짝을 하고 있다는 동문서답을 이끌어낸다. 대사가 대답하기를 일정하게 머무는 데 없이, 흰 구름과 짝하여 다닌다고 하시었다. 짝하는 것이 어디 흰 구름뿐이겠는가. 자연은 인간과 밀접하게 더불어 하는 것을….<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方丈: 화상(和尙). 국사(國師) 등의 지체 높은 중의 처소. 또는 ‘주지’를 뜻함. 掃石: 돌을 씻다. 臨: 임하다. 流水: 흐르는 물. 問師: 선서에게 묻다. 何處來: 어느 곳에서 오는가. // 師言: 선사가 말하다. 無所住: 일정한 곳이 없다. 偶與: 짝하면서. 白雲回: 흰 구름과 짝하면서 다니다.